식물의 공진화 - 나무와 곰팡이
우리가 곰팡이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은 나무의 옆구리에 자실체, 즉 버섯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때이다. 갈색의 거대한 버섯들은 둥그스름한 선반 모습으로 하나 또는 둘씩 돋아나는데 때로는 그 폭이 60~90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1년 중 일정한 시기에 이 커다란 선반의 밑에 있는 미세한 수많은 구멍에서 포자들이 떨어지며 그 수는 엄청난 규모이다. 대형 말굽버섯 하나가 1분에 2천만 개의 포자를 방출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다섯 달 동안 계속한다. 역광逆光에서 이 버섯을 관찰하면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포자들이 햇빛을 받아 마치 버섯이 연기를 피우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가 고목이 되거나 병이나 훼손으로 쇠약해졌을 때에 비로소 이러한 곰팡이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병을 일으켜 나무를 죽이는 원인이 곰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옳지 않다. 곰팡이는 나무의 살아있는 조직들은 공격하지 않고 오직 죽은 목질부만 공격한다. 나무에 해를 끼치기는 커녕 상당한 혜택을 준다.
우선 곰팡이가 소화한 후 생기는 목질부의 잔해는 다시 흡수할 수 있는 형태이다. 나무의 텅빈 줄기 속에 이러한 썩은 펄프가 쌓이면 떡갈나무는 과거에 자신의 중심부였던 곳으로 작은 뿌리를 들여보내서 일생 동안 저축한 것 가운데 일부를 다시 흡수한다. 썩은 목질부의 잔해에는 새로운 귀중한 자양분이 풍부하다. 텅빈 줄기 속은 동물들에게 안성맞춤의 집이 된다. 박쥐들은 이 구멍의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서 잠을 잔다. 올빼미들은 그 속에 둥지를 짓는다. 이러한 동물들의 배설물이 바닥에 쌓여서 나무에게 더 많은 자양분이 된다.
나무의 죽은 중심부를 제거하면 또 다른 이점이 있다. 나무 줄기가 꽉찬 기둥에서 속이 빈 대롱이 되면 외부의 물리적인 힘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속이 빈 나무의 줄기는 보다 더 신축성이 있고 안정적이다. 또한 노쇠하여 부분적으로 썩은 부분이 생긴 나무의 뿌리에 가해지는 압력도 상당히 줄어든다. 이러한 복합적 작용으로 속이 빈 고목은 강풍에 더 잘 견딜 수 있다. 바람을 막아줄 지형지물이 전혀 없는 윈저(windsor)와 같은 영국의 오래된 사냥지역에서는 폭풍이 불 때 수령이 100년 남짓한 떡갈나무들이 쓰러지는 경우는 자주 있으나 400~500년 된 고목들이 쓰러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무와 곰팡이는 각자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서로에게 이익을 준다. 이보다 훨씬 더 행복한 공생관계는 얼마든지 있다. 나무와 곰팡이의 공생관계는 양쪽 종의 역사에 비추어 볼때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계가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식물의 사생활] 데이비드 애튼보로 /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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