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착생식물의 탁월한 생존전략
일부 착생식물들은 악랄해서 자신이 얹혀 사는 식물들을 결국 죽이게 된다. 무화과 종류들 가운데 일부가 그렇다. 이런 나무들은 뿌리부근에 쌓이는 식물의 잔해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성장의 초기에는 다른 착생식물들 이상으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이 초기 단계가 지나면 성장이 느려진다. 그러나 뿌리가 차츰 자라면서 자신이 올라탄 나무의 가지를 타고 기둥 줄기까지 뻗어가 감기 시작한다. 뿌리는 서로 뒤엉켜 나무의 기둥 줄기를 격자무늬 형태로 둘러싸면서 밑으로 내려간다. 나머지 뿌리는 허공에 매달린채 수직으로 내려간다.
뿌리들이 일단 지면에 닿으면 무화과는 흙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왕성하게 자란다. 나무의 기둥줄기를 둘러싸고 있는 무화과 뿌리의 양이 갈수록 많아져 사실상 나무를 졸라서 죽이고 만다. 활엽수는 기둥줄기의 둘레를 불려나가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무화과가 이를 방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화과는 나무를 졸라서 죽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무화과의 무성한 잎이 나무꼭대기를 뒤덮어 대부분의 햇빛을 차지하는 데다가 흙속에 있는 자양분의 대부분을 흡수함으로써 나무는 햇빛과 자양분 공급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래지 않아 나무는 죽는다. 그러나 무화과 자신은 무너지지 않는다. 나무의 기둥이 썩어서 없어지더라도 격자무늬 형태로 뒤엉키며 나무의 기둥줄기를 감고 있던 무화과의 뿌리가 완벽한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속이 빈 원통 모양을 유지한 채 나무기둥이 없이도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다. 결국 무화과는 숲의 천정까지 닿는 거목으로서 독립한다.
[식물의 사생활] 데이비드 에튼보로 /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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