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다양한 싹틔우기 4
1987년 10월 16일 밤 대서양의 허리케인이 영국을 강타했다. 시속 160킬로미터를 넘는 바람이 대형 트럭을 전복시키고 공장의 굴뚝들을 쓰러뜨리고 지붕을 날리고 교회의 첨탑들을 꺾었다. 삼림지대를 강타한 허리케인은 400년 이상 굳건히 버티고 서 있던 떡갈나무들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둘레가 몇 미터나 되는 거대한 너도밤나무들이 성냥개비처럼 부러졌다. 어린 나무들은 거대한 낫으로 벤 것처럼 무더기로 쓰러졌다. 몇 시간 동안 1,500만 그루의 나무들이 파괴되었다.
물론 커다란 나무들에게는 허리케인이 휘몰아친 그날밤은 끔찍한 날이었다. 그러나 썩지 않고 생명력을 지닌채 흙 속에 묻혀 있던 씨들에게는 수십년 동안 기다리고 있던 기회가 찾아온 날이었다. 몇 달 후 날씨가 따뜻해지면 껍질에 있는 빛에 민감한 성분들이 씨에 내리쬐는 햇빛의 증가를 알아차리고 씨 안에 있는 식물의 배엽이 반응을 보이게 된다. 쓰러진 나무들 주위에는 여우장갑의 새싹들이 점점이 돋아난다.
여우장갑은 햇빛을 잘 받아야 성장한다. 1987년 허리케인은 영국 남부지방의 여러가지 식물종들에게 금세기 들어 가장 큰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여우장갑은 새로 얻은 영토를 오랫 동안 즐기지는 못한다. 쐐기풀도 자양분이 풍부한 토양을 차지하려고 평원의 지리다툼에 뛰어든다. 쐐기풀은 이러한 방법으로 영역을 급속히 확장하는 한 편 무성한 풀밭을 이룬다. 여우장갑과는 달리 쐐기풀은 2년이나 3년 뒤에도 계속 왕성하게 산다.
특히 토양에 짐승 배설물에서 나온 인산염이 풍부한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인간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쐐기풀의 서식처 부근에 다량의 인산염을 버린다. 인산염은 사람의 배설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나무나 풀을 태운 재와 먹고 버린 동물의 뼈 그리고 인체 자체에 의해서도 공급된다. 따라서 숲속에서 쐐기풀이 고립된 군락을 이루어서 자라고 있을 경우 이는 과거에 그곳에서 언젠가 나무가 베어지고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숲속 빈터의 이러한 식물 서식지들은 토양의 자양분이 대부분 빠져나가 식물들에게 필요한 양분이 부족하게 되어 식물들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보다 많은 자양분을 지닌 다른 식물들의 씨들이 이러한 생존 경쟁에 뛰어든다. 이런 식물들은 보다 늦게 출발하지만 선두주자들이 먼저 지치게 되면 결국 따라잡는다.
작고 가벼워서 바람에 의해서 운반되는 자작나무의 씨는 대량으로 생산된다. 자작나무들의 씨도 역시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면 싹이 틀 수 있다. 발아하려면 낮이 긴 여름날이 필요하다. 하루에 16시간의 일조량이 없으면 씨에서 싹이 트지 않는다. 일단 발아한 다음에도 이 나무는 자신에게 유리한 생장조건이 마련되기 전에는 몇 년 동안 새순에서 더 자라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결국 자작나무의 새순은 공터의 다른 식물보다 더 키가 높이 자라게 되며 어떤 경우에는 수가 많아져서 작은 관목숲을 이루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서 더 왕성하게 자라는 개체들이 다른 나무들보다 키기 더 커지면 관목숲은 성글어진다.
여름에는 자작나무 관목 숲 바닥은 무성한 나뭇잎들에게 가려서 햇빛을 좋아하는 작은 식물들은 더 이상 자랄 수 없다. 땅은 이제 자작나무의 영토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자작나무는 이 영토를 장기간 지배할 수가 없다. 큰나무들이 쓰러져서 공터가 생겼을 때 어치와 다람쥐가 그곳에 도토리를 심는다. 이런 동물들은 가을에 대비하기 위해서 공터에 묻어 저장을 한다. 그러나 일부는 다시 발견되지 않고 싹이 트게 된다.
많은 도토리가 싹틀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일단 싹이 튼 개체가 생존할 가능성은 높다. 도토리에는 많은 영양분이 저장되어 있다. 자작나무 씨보다 양양분을 훨씬 더 많이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발아후 처음 몇 달 간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때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어린 떡갈나무는 성장이 더디다. 새순이 땅에 요구하는 것은 성장이 빠른 자작나무보다 더 적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떡갈나무가 크고 강해지면 결국 자작나무와 경쟁을 벌이는 시기가 온다. 장거리 경주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따라잡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자작나무는 반드시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 나무는 생명이 길지 않아 최상의 성장 여건에서 경쟁이 없을지라도 50년이나 60년 이상 사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따라서 떡갈나무가 수십년 전에 잃었던 영토를 결국 다시 차지하게 된다.
[식물의 사생활] 데이비드에튼보로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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