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공진화 - 밀과 인류
1만 년 전에 지중해의 동쪽 끝 지역에 자라고 있던 키가 작은 야생풀의 한 종류는 씨가 익었을 때 다른 식물들과 달리 줄기에서 씨를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붙여 두었다. 당시 전반적으로 지능이 발달되고 뒤의 두 발로 일어서서 걷기 시작한 원시인류의 집단들은 그 지역에서도 살았는데, 동물들을 사냥하고 식물의 뿌리와 열매를 먹고 살았다. 원시인류는 식물이 씨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또한 식량이 되는 씨가 열리는 식물을 수확하는 데에 시간이 덜 걸리는 편리한 땅에 집중적으로 자라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식물의 씨가 땅에 떨어졌을 때 낟알로 줍는 것보다 줄기에 달려 있을 때 십여 알씩 한꺼번에 따는 것이 쉽다. 결국 그 특정한 풀과 인간 사이에는 공생관계가 맺어졌다. 그 풀은 상당한 비율의 씨를 잃는 대가로 생활영역을 현저하게 확대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더욱 많은 식량이 필요해지자 인류는 엄청난 면적의 삼림지대에서 나무를 베어내어 그들이 보호하며 키우는 풀의 경작지로 만들었다. 오늘날 이 풀의 후손인 밀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풀의 하나가 되었다. 밀은 경작하는 인간의 도움을 받아서 원래의 키보다 몇 배나 더 커졌으며 이제는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지역에서 단일재배 작물로서는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가장 크고 울창한 삼림들은 밀의 재배지를 만들기 위해서 벌목되었다. 과거에 작은 초본과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던 북미의 평원지대인 프레리는 갈아엎어지고 밀이 심어졌다. 밀의 옆에서 성장을 시도하면서 토양의 자양분을 놓고 경쟁하는 작은 풀들은 제초제 세례를 받아 제거된다. 인간의 도움으로 밀은 사실상 다른 식물들과의 사회적인 투쟁을 더 이상 겪지 않게 되었다. 밀은 사회적인 경쟁이 제거된 것이다.
[식물의 사생활] 데이비드 애튼보로 /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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