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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문명과 숲
작성자 : 관리자(admin)   0         2021-05-01 04:51:26     70

 

지금으로부터 약 5,000여년 전에 최초로 통일된 왕조를 가졌던 이집트의 경우 나일강 유역에는 약 BC7,000년 경부터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시작하였고 BC5,500년 경에는 농업이 시작되었다(Somerset Fry, 1994). 나일의 농업문명이 개화할 수 있었던 것은 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일 강 상류의 울창한 숲에서 유래된 부식토는 나일 유역의 농경에 필요한 자연적 유기질 비료의 공급원 역할을 하였다. 그 덕분에 농토는 기름지고, 수산물과 농산물의 생산은 지속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와 무역을 발달시켰으며, 당 시대 최고의 문명을 개화시켰다. 이와 같은 추세는 나일강 상류의 숲이 울창하게 남아 있던 로마 시대까지 계속 되었다(Westoby, 1988).

 

그러나 농경 문화의 발전은 인구의 증가를 초래했고, 늘어난 인구는 연료를 나일강의 갈대 대신에 상류 숲을 벌채해서 만든 숯에 의존하게끔 만들었다. 또한 왕조의 권위와 신성을 지키기 위해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건설에 사용된 돌을 운반하는데 사용된 나무를 조달하기 위해서 숲을 파괴하였다.

 

가장 큰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는 하나에 2.5톤이나 되는 석회암 230만 개가 소요되었다. 나일강변에서 채굴된 이들 석회암은 굵은 통나무를 깔고 밧줄로 묶어 운반했다.

카프라왕의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서 사용된 붉은 화강암은 나일강 상류 850km 지점에서 뗏목으로 운반된 것이다. 무게 1.2톤인 수백 만 개의 화강암을 운반하기 위해서 소요된 뗏목과 그 뗏목을 만들기 위해서 벌채된 목재의 양은 엄청난 것이었다. 수백 년에 걸쳐 계속된 피라미드의 건조에는 엄청난 목재가 소요되었고, 그 결과 숲 파괴는 필연적이었다.

 

나일강 하류 숲의 경우, 로마와의 전쟁에 필요한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벌채되었다. 특히 로마 시저 시대 이후 300년간 이집트의 숲은 커다란 수난기를 맞았는데 그것은 로마와 그리스에 숯을 수출했기 때문이다.

상류와 하류 지역에 숲이 파괴되면서 나일강 유역은 풍수해가 매년 계속되었고, 기름진 농경지들은 강수량의 감소로 인하여 염분 농도가 증가되어 불모지로 변하고 말았다. 그 결과 찬란했던 이집트의 문화 유적은 모래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로마시대 이후 700여 년간에 이집트는 지중해 연안을 제외하고 모든 국토가 사막으로 변하고 말았다.

 

[숲과 문화] 전영우 / 북스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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