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문화

식물 문화 공간입니다.

Url Copy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숲
작성자 : 관리자(admin)   0         2021-05-01 04:49:45     73

 

고대 문명 발달에 기여한 숲의 역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록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해낸 수메리아 사람의 서사시, 갈가메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서사시는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 우룩의 영웅 길가메쉬의 위대한 업적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부터 약 4,700여 년 전에 지어진 이 서사시에는 문자로 역사를 기록한 유사이래 최초의 영웅이랄 수 있는 길가메쉬가 그 자신의 도시 국가 우룩을 건설하기 위해서 얼마나 울창하고 광대한지 그 넓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숲을 여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개화시키는데 숨은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울창한 숲 지역은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 문명을 개화시킨 이 지역의 숲은 오늘날 대부분 사막이나 준 사막과 같은 불모지역으로 변했으며, 그러한 현장은 이라크나 그 주변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해낸 수메리아 사람들이 남긴 설형문자의 기록에 의하면, 지금부터 5000년 전인 BC3000년 경에 수메리아 사람들은 밀과 보리를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남부지역에 경작하기 시작하였다. 즉 BC3500년 경에는 밀과 보리의 경작비가 비슷하였으나, BC2500년 경에는 보리가 85%의 경작면적을 차지하고 밀이 차지하는 경작면적은 15%이었다. 밀 경작 면적의 급격한 감소는 토양 속에 함유된 염분 성분의 상승으로 경작지의 대부분이 밀이 자랄 수 없는 토양조건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키시, 우룩, 우르, 라이쉬와 같은 수메리아의 고대 도시들이 발달되면서 보다 넓은 경작지가 필요하였으며, 경작지의 확장은 주변 숲의 벌채로 충당되었다.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되어 BC2100년 경에는 밀 농사가 겨우 2%의 수준에 머물게 되었고, 마침내 BC2000년 경에는 밀농사가 사라지고 말았다. 즉 식량은 BC2400년까지 지속적으로 증산되다가 BC2100년 경에는 최대 생산기의 42%, 그리고 BC1700년 경에는 35%만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말해주듯이 숲 파괴로 파생된 경작지의 염분 상승은 더 이상 작물을 생산할 수 없는 토양 조건을 초래시켰다(Ponting, 1991). 

 

지속적인 숲의 훼손으로 초래된 토양 유실은 경작지 토양의 염분을 증가시켰고, 그 결과 경작지들이 불모지로 변하여 더 이상 문명을 부양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비슷한 기후적 특징을 가진 열대나 아열대성 기후 지역에 위치한 마야 문명이 그러하고, 인더스 강 유역에서 꽃피었던 인더스 문명이 그러하다.

 

[숲과 문화] 전영우 북스힐

 


Guest (행간격 조절: Enter, Shift + Enter)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 가능합니다. 로그인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