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포커스
치유포커스 공간입니다.
미녀산 굴참나무
식물 안에 문화 있다 -4-
미녀산 전설과 굴참나무
거창 가조에 가면 ‘미녀봉’이라고 있습니다. 마치 미녀가 드러누운 듯한 산의 형세와 군상들이 여성의 신체와 연결되어 흥미를 더합니다. 이름하여 성(性)의 산, 여성성을 담뿍 지닌 이 산은 전설 속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먼 옛날 옥황상제의 딸과 어떤 장군이 첫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를 알고 노한 옥황상제가 둘을 떨어트려 영원히 산으로 변해 누워있게 했답니다. 광주~대구고속도로 가조를 지나면서 남쪽으로 길게 누워있는 산은 미녀봉이 되고, 북쪽으로 우뚝한 산은 장군봉이 되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미녀산 중턱에는 몸통이 굵은 500년 된 굴참나무 한그루 있습니다. 혹 장군봉에 우뚝 갇힌 장군이 굴참나무로 자라나 미녀를 찾아온 게 아닐까 싶은데요? 굴참나무 위쪽에 있는 미녀의 은밀한 곳을 닮은 양물샘을 누가 볼새라 슬쩍 가려주기까지 한다는군요. 자꾸만 눈길이 가는 미녀와 굴참나무!? 성(性)스러운 그 전설의 자연 속으로 한번 들어가볼까요?
미녀산 아래 도착하니 동네 이름도 재미있군요. 양기마을과 음기마을이라. 음기마을 지나 미녀산 들머리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오르며 막연히 굴참나무를 찾습니다. 무턱대고 낯선 숲길을 따라 오릅니다. 무성한 풀이 길의 절반을 덮고 있어 마음이 조금 불편하네요. 요즘 사람들 발길이 드물었나 봅니다. 숲속으로 조금 들어가니 다행히도 안쪽으로는 등산로가 뚜렷합니다. 건데 이번에는 거미줄이 얼굴과 가슴에 사정없이 덮쳐오네요. 땀이 비 오듯 하는데 굴참나무 위치를 모르니 이제나 보일까 하고 조바심도 납니다. 그렇게 두어 번 쉬었다가 1km쯤 오르니 널찍한 숲길 가운데서 거대한 굴참나무가 떡하니 반겨줍니다. 늠름한 장군의 기개! 불편한 성가심을 참고 찾아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기쁜 마음 누르고 주변을 서성이며 한참 바라봅니다. 등산로 위쪽 방향으로 단순한 나무 의자 하나 놓여있습니다. 호젓한 산속, 어떤 여운이 흐르는 운치가 있군요. 사랑하는 연인의 속살을 헤치고 뿌리내린 500년의 세월, 장군의 호방한 기개 속에 피어난 섬세한 사랑의 마음인가 합니다. 사랑의 힘은 옥황상제도 막지 못하는가 봅니다.
장군의 500년 굴참나무를 바라봅니다. 듬직하고 굵은 몸통을 지닌 굴참나무는 풋도토리를 가득 달고 있습니다. 건강하다는 증거겠죠? 건데 아래 둥치에 불룩 배가 나와 있습니다. 예전에 도토리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많이 두들겨 맞은 듯합니다.
미녀산 정령같은 굴참나무에 허리 숙여 인사 한번 드리고 발걸음을 돌립니다. 건데 내려오는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스마트폰 열어서 네비 켜고 차 세워둔 곳 위치를 파악해 보니 반대편 골짜기로 내려섰네요. 희미한 오솔길을 타고 넘어오는데 길이 딱 끊기고 찔레 덩굴 가시에 우거진 풀이 앞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한발 물러났다가 허술한 곳을 찾아 겨우 빠져나오니 온통 거미줄에 땀 범벅이 되었네요. 허락도 없이 미녀 아래 들었다가 장군한테 혼이 난 듯 ㅋ~
푸르고 맑은 가을날 예의 차리고 도시락 싸서 다시 한번 찾고 싶네요. 미녀가 누운 산이기에 더더욱~ 후끈 달아오르듯 성(性)스러운 미녀 아래 굴참나무!
로그인하시면 댓글 작성 가능합니다. 로그인
Guest (행간격 조절: Enter, Shift + 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