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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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길을 여니~
엎드려 길을 여니~
작고 가녀린 들풀은 본디 씨앗의 형태로 겨울나기를 한다. 야생의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니 피해가야 하는 거지. 하지만 오랜 습관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친구들이 있으니. 로제트 식물이라 한다. 이들은 가을에 싹이 터서 겨울을 이기는 방법을 찾았다. 잎을 방석처럼 둥글게 내밀고 땅바닥에 바싹 엎드리는 거지. 잎이 서로 겹치지 않으니 햇빛을 골고루 받겠지? 바람을 피해 수분 증발도 막을 수 있을 테고. 해가 뜨기만 하면 바로 몸을 녹일 수도 있고, 지열(地熱)을 이용해 한 번 더 추위를 견딜 수 있지. 뭐든 답을 알고 나면 쉬운 법. 이것이 볼품없는 들풀이 설계한 월동준비다. 볼품 있고 없고는 무엇으로 판단하겠는가?
따스한 햇살 아래 한겨울을 이겨낸 배추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봄을 맞은 텃밭에 지난가을 캐지 않은 배추다. 겨우내 얼마나 아프고 시렸을까? 그렇지만 너무 걱정은 마! 거친 환경에 적응해서 잘 살아남았으니까. 그러나 형태는 지난겨울 크고 튼튼하던 그 배추가 아니다. 배춧잎은 더욱 촘촘하게 작고 단단해졌다. 바닥에 바싹 엎드려 로제트를 이룬 거지!
달맞이꽃, 꽃다지, 지칭개, 뽀리뱅이, 개망초, 꽃마리, 그리고 냉이! 추운 겨울을 이기고 봄의 기지개를 펼치는 전형적인 로제트 식물들이다. 이들은 주로 한두해살이다. 들풀이 자라는 생존환경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빈터를 차지하려는 다툼도 심하다. 햇빛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로제트는 다른 들풀이 잠자리에 드는 한겨울 비어있는 공간을 선점한다. 빨리 시작하는 만큼 봄을 빨리 열 수 있으니까. 100m 달리기를 하는데 10m쯤 앞서 출발하는 것이지. 그 결과 로제트는 봄 들판에서 생존경쟁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여는 일! 무턱대고 엎드리기만 하면 될 일일까?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과 전략,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로제트는 엎드려 길을 열었다.
* 이 글은 이코노뉴스 숲길칼럼에 연재한 내용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 로제트는 엎드려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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