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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의 수피를 입다
철인의 수피를 입다
숲길에서 마주치는 나무껍질을 눈여겨 본 적이 있을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살아 있는 갑옷. 수피(樹皮)는 가장 바깥에서 성을 지켜주는 튼튼한 성벽과 같다.
수피는 안쪽 수피와 바깥 수피로 나눌 수 있다. 안쪽 수피는 살아있는 조직으로 광합성의 당분이 이동하는 통로다. 바깥 수피는 사람의 피부와 마찬가지로 죽은 조직이다. 이 조직은 지나친 추위나 열기를 막고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한다. 수분의 손실을 막고 병원균이나 곤충의 침입도 막아준다. 죽어 있는 것이 살아가는 것을 온전하게 지켜주는 것이지. 生과 死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서로를 보듬고 있는 삶의 현장! 수피를 통해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 있다는 인식에 다가서게 된다. 참 역설적이다. 두루 살펴보면 세상에는 역설적인 현상이 참 많은 것 같다. 논리와 합리적 판단 너머에서 움직이는 생명현상! 생물과 무생물 사이, 또 그 너머~
숲에 나가면 나무들의 수피 살펴보는 걸 즐겨한다. 수피의 문양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다. 각양각색의 수피! 문양의 독특함과 질감의 느낌, 딱딱하거나 말랑말랑하고, 거칠고 매끄러운 촉감 등을 엿볼 수 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대로 서어나무는 서어나무대로,,,
대개의 나무는 나이가 들면 수피의 문양이 변한다. 그중에 느티나무는 특히 수피의 변이가 심하다. 겉껍질이 떨어져 나오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문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수없이 새살로 피어나는 문양. 연륜을 이렇게 아름답게 쌓아가는 나무가 또 있을까? 나이를 먹어 신령스러운 빛이 나는 느티나무를 조상님들은 알아봤다. 그래서 천년 세월 정기를 간직한 신수(神樹)로 모신 거다. 우리 시골 마을 정자나무로 느티나무가 가장 많은 이유다. 대기만성의 철인(哲人). 느티나무는 신령스런 철인의 수피를 입고 있구나!
*이 글은 이코노뉴스 숲길칼럼에 연재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네 마을을 지켜온 성속일치(聖俗一致)의 정자나무 할아버지
천년을 살아온 대기만성의 철인(哲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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