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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목의 강물여행
식물 안에 문화 있다 -5-
춘양목의 강물 여행
울진·봉화 지역의 소나무는 예로부터 유명합니다. 백두대간의 험악한 지형과 겨울 추위, 많은 적설량이 나무를 단련했겠지요? 이런 환경에서 천천히 자라게 되니 조직이 치밀합니다. 죽어있는 조직인 심재 부분이 아주 많아서 잘 뒤틀리지 않고 쉽게 썩지도 않는답니다. 이렇게 뛰어난 목재의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궁궐재로 인기가 높을 뿐 아니라 황장목이란 이름까지 얻었답니다. 황장목은 조선 왕실의 관을 짜던 진귀한 목재입니다. 이 지역의 소나무는 현대에 와서 춘양목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는데요. 이번 이야기는 한때 이름값을 세상에 날렸던 춘양목을 따라가는 여행입니다.
봉화에 있는 춘양면은 옛날부터 소나무의 집산과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답니다. 펄펄 끓는 어느 여름날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춘양역에 도착했습니다. 볼품없이 작은 역이지만 한때 대단했던 곳입니다. 역사 안에서 춘양목 한 토막을 발견했습니다. 나이테가 198개, 결이 곱고 아름다운 무늬를 제 몸속에 새겨놓았습니다. 요즘은 이 정도 나이의 춘양목 보기도 쉽지 않다고 하니 더욱 귀하게 보입니다.
1955년 7월 1일 영동선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이때 춘양역이 생기면서 춘양은 소나무 집산지로 더욱 큰 활기를 띠게 됩니다. 교통의 맥점이 재화와 물류의 블랙홀로 작용하는 것이겠죠. 봉화 울진 삼척 등에서 생산된 소나무들이 이곳 춘양역으로 모였다가 전국으로 흩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춘양목이란 이름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GMC 트럭에 실려 온 소나무들이 역사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답니다. 현장에서 바로 목재를 가공하는 제재소도 많았답니다. 소나무의 집산과 가공이 번창하니 춘양은 벼락 호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과 현장 인부들로 떠들썩하니, 식당, 술집, 여인숙이 늘어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은 산골의 영화는 오래 가지 못하고 7~8년 만에 막을 내렸답니다. 자연자원은 무한하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대구 달성에 있는 도동서원으로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도동서원이 *춘양목으로 지어졌다고 하거든요. 불볕의 체감온도가 최고로 느껴지는 날의 오후입니다. 도동서원 주차장에 들어서니 배롱나무 붉은 꽃이 정염을 불태우듯 피어오릅니다.
기차역이 들어서기 전 조선시대에는 목재를 어떻게 운반하였을까요? 거리가 짧으면 우마차를 이용할 수 있었겠지만, 먼 지역으로 많은 물량을 옮기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도동서원이 그 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나무 인문학자 강판권은 “춘양에서 낙동강에 띄워보낸 소나무를 현풍에서 건져 올려 지었다”고 밝혀 놓았습니다. 그때 그 *춘양목들은 강물을 따라 먼 여행을 했군요. 굽이굽이 낙동강 물결따라 시공이 스며드는 여행을요. 도동서원 *춘양목의 세포 속에는 어떤 강물의 경험들이 속삭임의 무늬로 들어앉아 있을까요?
더위도 식힐 겸 중정당 우물마루에 앉아 *춘양목으로 만들었을 기둥의 섬세한 골계미를 바라봅니다. 잠시 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섰습니다. 역사의 물줄기 굽이쳐 흐르는데 여기 우리 소나무 문화의 한 자락! 춘양목의 향기도 따라 흐릅니다.
(*조선시대에 춘양목이라 불렀다는 사료는 없지만, 글의 의미를 잇기 위해 춘양목이라 썼습니다.)
20220827
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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