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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참나무
식물 안에 문화 있다 -3-
손기정 참나무
손기정 선수와 참나무라. 참 어색해 보이는 조합인데요, 그 인연의 고리는 86년 전 독일에서 열린 11회 올림픽으로 치켜 올라갑니다. 베를린올림픽에 얽힌 참나무는 그리스 신화와 역사는 물론 민족의 치욕과 자부심, 흥미로운 반전의 이야기를 켜켜이 쌓고 있답니다.
1936년 일제강점기. 손기정 선수는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머리에는 월계관을 쓰고 양손에는 부상으로 받은 월계수를 들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월계수와 월계관의 유래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네요. 그리스 신화에서 월계수는 다프네를 월계관은 아폴론을 상징한답니다. 아폴론이 다프네를 짝사랑했는데,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해버리자 그 잎과 가지로 월계관을 만들어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계관은 상당한 권위를 지니겠지요. 이러한 전통은 점차 유행하여 그리스의 고대올림픽 승자나 로마의 전승장군, 대시인에게도 씌워주게 되었답니다. 유럽에서 월계관은 전쟁의 승리나 문화예술을 빛낸 이들에게 명예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지요. 지금의 노벨상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상징을 굳힌 월계관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열리면서 우승자에게 씌워주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첫 번째 올림픽이죠. 맨 처음 아폴론이 쓴 월계관은 월계수로 만들었지만, 올림픽이 후대로 진행되면서 그 나라의 상징성이 큰 나무를 썼습니다. 월계관이란 고유한 이름만 남은 것이지요.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올리브나무로 만들었답니다. 다시 베를린올림픽으로 돌아오면, 이때는 루브라참나무로 만들었고요. 독일 동전에는 루브라참나무를 심는 소녀상이 있습니다. 독일인들이 이 참나무를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며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럽 참나무 문화의 한 모습이기도 하구요. 베를린올림픽에서는 이뿐 아니라 루브라참나무 묘목을 부상으로 주었습니다. 이 묘목을 우승자들에게 준 이유는 게르만의 우월성(?)을 온 세계에 퍼뜨리려는 목적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덕분에 히틀러 참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군요.
손기정 선수는 마라톤 우승의 상징으로 루브라참나무로 만든 월계관과 월계수를 갖고 귀국을 했습니다. 이 나무를 모교인 서울 중구 만리동 양정고등학교에 심었답니다. 8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는 옮겨가고 손기정체육공원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월계수 참나무도 훤칠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나무는 루브라참나무가 아니라 핀오크라 부르는 대왕참나무입니다. 여러 설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해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일에서 일본을 거쳐 긴 시간 동안 여행하면서, 본국에 돌아와 묘목을 심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1936년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때입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불과 3해 전이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향신료와 자원 약탈을 위해 검은손을 뻗치던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시상대에 올랐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일장기를 달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독일인들 마저 손기정 선수를 “가장 슬픈 올림픽 우승자”라 불렀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 당시 마라톤 우승은 억눌린 민중의 가슴을 들끓게 하는 긍정의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의미의 씨를 품은 한 그루 참나무는 역사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찾는 이들에게 무심한 듯 도전과 인내, 승리의 힘을 주고 있습니다. “한 그루 나무에 사람의 정신이 깃들면 그 인물도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 참나무 아름드리 몸통으로 살아있는 그 자체로 수많은 사연을 함축한 스토리텔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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