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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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 고을 풍수와 도선
유교를 국시로 삼는 조선의 조정에서 고려의 비보도참설을 위주로 한 도선의 풍수담론은 15세기 말에 이르러 쇠락하였지만, 고을의 향촌사회에서는 취락공동체의 번영과 지배사회집단의 통치질서 유지라는 의미체계로 수용되면서 여전히 강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풍수설은 조선 중후기에 지리 지식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 증가에 따라 관료와 지식인 계층으로 널리 퍼졌고, 특히 지역 사림 혹은 사족층의 사회적 성장이 두드러지고 그들이 향촌사회에 세력의 근거지를 확보해나가는 과정에서 풍수는 유교적 세계관의 틀 내에서 유교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조선시대에 지리산권역의 고을 취락에서 전개된 도선 풍수담론의 구성, 형식, 내용, 특징은 어떻게 나타날까?
지리산 권역의 고을 취락에서 도선의 풍수담론은 외면적으로 읍기(邑基) 경관의 풍수적 해석과 관련하여 전개되었다. 이러한 사실의 문헌적 근거는 진주의 『진양지(晉陽誌)』(1622~1632), 남원의 『용성지(龍城誌)』(1699), 순천의 『승평지(昇平誌)』(1618) 등의 읍지에서도 편린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고을의 향촌사회에 전개된 도선의 풍수담론을 내용상으로 보자면 유교 이데올로기적이고 문화생태적인 성격으로 읍 취락과 관련지어 재구성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취락의 문화생태적 입지나 경관 구성과 관련한 지역공동체의 번성이라는 틀 내에서 도선의 풍수담론은 재구성되어 사회적으로 수용되어 기능하였던 것이다.
담론의 주체로서 지리산권역 고을의 정치사회적 지배집단은 도선의 풍수담론을 고을의 번영과 인재의 번성을 위한 유교적 담론으로 재구성하였으며, 그들은 도선의 풍수담론을 통해서 고을의 재변(災變) 방지, 지배층의 신변 안위, 사회적 통제와 신분적 질서의 유지, 사회집단의 정치적 세력 확장 등을 꾀하고자 하였다.
사회적 담론에는 담론을 주도하는 주체집단(정치권력)의 속성이 반영되어 있기에, 조선 중기에 들어서 도선의 풍수담론은 관건과 사족권의 대립, 갈등이라는 사회집단 간의 공간정치적 대립 국면도 연계되어 드러나고 있다. 남원은 정치 기능적으로 풍수담론을 수단으로 중앙정부 관료 세력(수령권) 통치 질서 유지를 의도한 의미체계를 보이고 관의 주도력이 강조되어 있으며, 상대적으로 진주는 사회정치적으로 지배층 내의 갈등 양상이 도선의 풍수담론과 관련하여 드러나는바 관권 세력에 대한 향촌 사족 세력의 영향력 확대가 의도된 풍수담론의 재구성이라는 의미체계가 나타난다.
또한, 조선시대에 전개된 도선의 풍수비보 담론은 홍수와 같은 자연재변을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취락경관의 구성에서 문화생태적인 적응의 원리로 운영되었으며, 따라서 고려시대의 정황과는 달리 비보 형태상 사찰 비보의 비중과 역할은 유교의 지배적 이데올로기 탓에 축소되었고 상대적으로 숲 비보 같은 취락의 문화생태적인 비보 기능이 확대되었다는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도선의 풍수담론은 지리산권역의 고을 취락에서 정치사회적 지배세력에 의해 재구성되어 통치 질서 유지와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리산의 종교와 문화』 김기주 외 7인 보고사
최원석 편
2013년 5월 31일 초판 1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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