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료실
지리산 자료실 공간입니다.
지리산의 인물 - 우천 허만수
지리산을 위해 태어난 사람 우천 허만수
중산리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법계교를 건너면 식수대와 취사장이 갖춰진 야영장이 나온다. 이곳 초입에 ‘우천 허만수 추모비’가 서 있다. ‘지리산 산신령’으로 알려진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洙)는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 세석고원에 들어와 초막을 짓고 살면서 지리산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샘터를 개발, 보수하는가 하면 숱한 사람을 안내하고 구조하는 데 한평생을 바친 전형적인 산악인이다. 제석봉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다보면 지금은 모두 철사다리로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허우천 씨가 손수 설치한 나무계단들이 곳곳에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사람을 안내하고 구조했던 허우천 씨는 1976년 6월에 정든 세석의 철쭉을 뒤로 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그가 60살이 되던 해였다. 당시 가까이 지내던 산악인들에게 “이제 지리산으로 영원히 들어가니 한 달 내 오지 않으면 내 소지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그가 칠선계곡, 거림골, 도장골 또는 신선너덜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을 거두었으리라는 말만 무성할 뿐 늘 지리산과 벗하던 그의 최후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허우천 씨는 1916년 진주시 옥봉동에서 태어나 10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대학을 나왔고, 1941년에 결혼한 부인 전경림 씨와 함께 광복 후 귀국했다. 진주에서 서점을 운영했지만 몸과 마음은 늘 지리산에 있었고 결국 지리산이 좋아 세석에서 갈대와 거적으로 움막을 짓고 처자식도 버리고 홀로 살면서부터는 오직 지리산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허우천 씨는 30여 년 간 수많은 조난자를 구조하고 칠선계곡과 한신계곡의 등산로를 개척하기도 했으며, 또 샘을 파고 보수하고 망가진 등산로를 복구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1960년대 당시 지리산에 산장이 전혀 없었던 시절 세석고원 음양수샘 근처에 있었다는 그의 오두막은 등산객들의 유일한 쉼터이자 대피소였다. 하지만 그를 거동 수장자로 신고하거나 심지어 구타하는 사람들까지도 있어 그로 인해 산에 오는 사람들에 대한 회의감과 산생활에 대한 좌절감에 젖기도 했다고 한다. 1980년 6월 8일 진주산악회에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법계교 근처에 세운 추모비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가 되어 살다 산의 품에 안긴 이가 있다...... 님은 평소에 ‘변함없는 산의 존엄성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인생관을 낳게 한다’고 말한 대로 몸에 배인 산악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니 풀 한포기 돌 하나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일이나 산짐승을 잡아가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되돌려 받아 방생 또는 매장한 일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랴. 님은 1976년 6월 홀연히 산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으니 지리 영봉, 그 천고의 신비에 하나로 통했음인가? 가까운 이들과 따님 덕임의 말을 들으면 숨을 거둔 곳이 칠선계곡일 것이라 하는 바, 마지막 님의 모습이 6월 계곡의 철쭉빛으로 피어오르는 듯하다. 이에 님의 정신과 행적을 잊지 않고 본받고자 이 자리 돌 하나 세워 오래 그 뜻을 이어가려 하는 바이다.
『지리산』 김명수 지음 돌베개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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