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료실
지리산 자료실 공간입니다.
지리산권 마을 풍수와 도선
지리산권역에 산재하고 있었던 마을 단위에서도 조선 중후기에 도선의 풍수담론은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권역에 취락 형성이 본격화되면서 주민들에 의해 마을의 풍수적 입지뿐만 아니라 도선의 풍수비보설에 의거한 경관 형성의 노력으로 재구성되었다.
지리산지에는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을 겪은 후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중 생활상의 피폐로 말미암아 민중들의 피난처로서 본격적으로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8세기 무신란(1728) 이후로 지리산 골짜기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피화(避禍)하여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 유민들이 주거지를 선택하고 정착하기까지는, 지리산 청학동에 관해 일찍부터 유포되었던 이상향으로서의 장소 정보와 장소 이미지가 그들에게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때맞춰 일기 시작한 풍수도참 비결의 유행과 정감록 비결을 신봉하는 자들의 십승지 탐색은 청학동의 장소 이미지에 또 한 차례의 질적인 쇄신과 구축을 유발했다. 지리산 청학동이 명당, 길지의 승지적 생활공간으로 장소 정체성이 구성된 것이다.
조선 후기에 지리산지에 인구의 급증과 함께 다수의 촌락이 형성되고 청학동 풍수도참 비결이 유포되면서 민간인들의 이상사회와 그 공간적인 실현 장소로서의 이상향에 대한 이념적인 지향은 커져갔다. 피난, 보신의 땅으로서 지리산지가 주는 매력은 이상적인 풍수적 장소로서의 승지였으며, 청학동은 그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지리산지의 이상향 담론이었다.
도선은 고려와 조선사회에서 풍수도참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그의 비기(秘記)는 조선시대에까지 지식인과 민간 계층에 언급되곤 하였는데, 도선 풍수도참 담론의 사회적 영향력은 『정감록』에까지 다수의 도선 비기가 포함되는데 이른다.
지리산권역의 여러 촌락에서는 마을의 풍수적 입지나 지명유래를 도선과 관련시킴으로써 장소적 가치를 높이거나, 비보풍수를 활용하여 문화생태적인 경관을 이상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사례들도 나타났다. 마을의 입지와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된 도선 설화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 용은마을은 용이 숨은 마을이라 한 데서 연유하였다. 일설에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용이 숨어 있는 길지임을 알고 터를 잡아두니, 사람들이 명당 터를 찾아들어와 살면서 용은마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의 국사봉은 도선국사가 다녀간 대명지이다.
도선의 비보풍수는 지리산권역 촌락의 경관구성에도 큰 문화적 영향력을 미쳤다. 지리산권역의 마을 경관에서 보이는 풍수 비보의 형태는 조산 혹은 돌탑, 숲, 못, 제의(놀이)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로써 지리산권역 5개 시군의 마을에는 도선의 풍수사상에서 연원하는 보편적으로 풍수문화의 영향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의 마을풍수라는 문화전통을 통한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 및 태도는 문화생태적 과정을 수반하였다.
『지리산의 종교와 문화』 김기주 외 7인 보고사
최원석 편
2013년 5월 31일 초판 1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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