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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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인물 - 김경렬
지리산 박사(김경렬 옹)
지리산에 대한 가장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지리산 박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지리산을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지리산에 살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또 지리산 등산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해서 지리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심지어 지리산에 있는 자연학습원의 연구관들도 그들의 전공분야에 정통할 따름이지 이 산이 지닌 역사나 인문사적 전체에 통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둘레의 길이만도 800여리에 이르는 지리산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안고 있다. 지리산이란 소설을 쓴 사람도, 빨치산의 실록을 쓴 사람도 이 산의 모든 것을 죄다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숨결과 역사를 안고 있는 지리산을 찾는 사람은 한 해 동안만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그들 가운데는 민속이나 설화 신앙의 뿌리를 찾는 이도 있고, 자연 생태계나 역사의 발자취를 조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느 한 특정분야가 아닌 지리산의 인문 사적을 포함한 모든 것을 수백, 수천의 산봉우리와 계곡 능선을 일일이 자신의 발로 밟고 다니며 20년 이상 집중탐구해오고 있는 사람으로는 김경렬(金敬烈) 옹이 독보적이다.
부산 영도구 동삼동 504에 살고 있는 김옹은 언론 일선에서 은퇴한 뒤로 지리산 탐사에 집중적인 정열을 쏟았는데 그 결실을 87년 11월에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이란 책으로 펴냈고 88년 11얼에는 그 2권이 나왔으며 현재 3권이 제작 작업중에 있다.
김옹은 중국에서 통신사 특파원을 한 것을 시작으로 매일신문 대한신문 부산일보 등 일선기자 생활만도 27년간 종사한 언론인이다. 그는 또 수많은 단편기록 영화들을 손수 제작한 영화인으로 영화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한국영화인협회 감사로 있다.
김옹은 지난 30년대 금강산 탐승단원을 인솔하여 등산을 했던 것을 비롯하여 덕유산 극지등반 지리산 칠선계곡 등반로 개척단장을 맡았을 만큼 산악인으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옹은 지리산의 여러 등반로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학생등반대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해박한 한문지식을 활용, 옛 문헌을 수집하여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지리산의 역사를 규명해온 사학자이자 인문 사적(史蹟) 연구가로 가장 많은 일을 했다.
‘유두류록(遊頭流錄)’ 등 번역
김경렬옹은 경남 고성에서 살던 소년시절에 먼 인척인 산청의 한 할아버지로부터 지리산 얘기를 듣고 크게 감명, 도보로 지리산록을 찾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리산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김옹은 언론 일선에서 취재기자로 열심히 뛰고 있을 당시에도 김종직이 1472년에 썼던 ‘유두류록(遊頭流錄)’, 김일손이 1489년에 썼던 ‘속두류록(續頭流錄)’, 이륙(李陸)이 1461년에 쓴 ‘두류록(頭流錄)’과 그 100년 뒤에 조식이 쓴 ‘유두류록(遊頭流錄)’ 등 옛 사람들의 지리산 산행기 원문(한문)을 읽고 지리산의 인문 사적 취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김경렬 옹은 지난 62~64년에 걸쳐 ‘지리산 7주야’ ‘산막 주변’ ‘지리산 자락의 민화와 토요(土謠)’ ‘음악의 연원지 지리산’ ‘지리산 개발의 숨결’ ‘지리산 학술조사 및 칠선계곡 등반로 개척 보고서’ 등의 값진 글을 부산일보에 시리즈로 연재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지난 65년 월간 ‘세대(世代)’ 1월호에 김일손의 ‘속두류록’을 전문 번역 게재했다. 그는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을 주간 ‘일요건강’지에 시리즈로 실었고 ‘능선길 1백리’란 베목의 지리산 이야기를 ‘부산상의’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김옹은 이러한 취재기사나 옛 산행기 번역 작업과 같은 집필 외에도 지난 70년 이래 15년 동안에 걸쳐 손수 8mm 소형영화 촬영기를 메고 지리산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여덟 편에 이르는 지리산 단편영화들을 만들었다. 이 기록 영화들은 전국의 각종 소형영화제에서 입상했을 뿐만 아니라 사라져 가는 지리산의 문화유산과 자연생태계를 수록한 소중한 자료의 보존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옹은 학술조사팀이나 등산로 개척단을 인솔하여 지리산을 찾기도 했지만 친지와 함께 며칠을 계속하여 지리산의 같은 코스를 수차례나 반복답사하거나 단독으로 김종직이나 김일손이 갔던 길을 옛 문헌을 바탕으로 밟기도 했다.
마애불상(磨崖佛像) 발견도
김옹은 지난 87년 지리산이 전설적인 개산 역사를 안고 있는 남원군 산내면의 달궁 마한 피난도성설을 규명하기 위해 험준한 지리 서북릉을 뒤진 끝에 정령 부근의 1천4백m 고지의 암벽에서 삼국시대 이전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인물석상 10여개를 찾아냈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마애인물석상이 발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이것이 군(群)을 이루고 있는 것 역시 희귀한 사실이다.
김옹은 이 마애불군과 현지 주민들에게 전해오는 설화와 각종 옛문헌들을 토대로 지리산 깊은 오지의 달궁(月宮) 피난도성이 처음으로 지리산을 열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그 밖에도 운상원(雲上院・七佛庵)의 남방불교 전래와 국악의 연원지 규명을 비롯한 다양한 지리산의 역사를 밝혀 오고 있다.
김옹은 지리산의 옛 역사뿐만 아니라 근세의 동학(東學)농민혁명과 6・25를 전후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빚어졌던 지리산의 비극, 화전민과 원주민의 생활상, 민요와 민속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연구를 지금도 정력적으로 펼쳐 오고 있다.
김옹은 현재에도 부산에서 매일 펴내고 있는 산악지 ‘우리들의 산’에 ‘어제의 지리산’을 자신이 손수 촬영 보존하고 있는 사진과 곁들여 화보 중심으로 연재하고 있고 김일손의 ‘속두류록’을 따라가는 기록을 이미 펴낸 책에 수록한 것과 달리 새로 취재된 자료를 보충하여 재집필, 동시에 연재하고 있다.
김옹은 노령인데도 불구, 현재도 쉬지 않고 지리산을 답사하면서 손수 카메라로 사진을 담고 있고 밤을 새워 취재한 내용을 집필하는가 하면 자신의 다큐멘터리 르포집도 손수 편집하고 교정을 보는 등 치밀하고 빈틈이 없게 일을 하고 있다.
김옹은 오늘의 지리산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등쌀에 황폐화되고 있는 현실을 퍽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지리산이 근세 이래 6・25 혼란기까지의 여러 참상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많은 현지 주민들의 비극이 정확하게 규명되고 지리산의 역사가 올바로 쓰여질 것도 바라고 있다. 그 자신이 지리산의 올바른 역사 정립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또 지리산에서 삶을 걸고 투쟁했던 이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 작업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옹은 새해에도 건강하게 지리산을 정력적으로 누비고 다닐 것이다.
『지리산365일 3권』 최화수 지음 도서출판 다나
1995년 1월 25일 4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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