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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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한편 도요토미는 14만여 명의 왜군을 편성하게 한 후 1597년 2월 21일, 개전 명령을 내렸다.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 14,700명을 비롯하여 가토 구로다 니베시마 시마즈 초소카베 하치스카가 각 1만여 명씩, 제8군 모리 우키타 연합군 4만여 명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번주(藩主) 중심의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임진년에 비해 규모가 다소 적었지만,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 대응하기 위해 수군이 1만여 명 증파되었다.
조선에서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3도를 청야작전(淸野作戰)을 한다고 하여 고을의 집을 비우고, 들판의 곡식을 포함하여 먹거리를 없앤 후 명나라에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수군으로 하여금 증파되는 왜군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명나라에서 온 수군은 전라도에 집중 배치되기 시작한 가운데, 1597년 7월 15일, 3도 수군통제사 원균은 도원수 권율의 지시에 따라 경상도 거제 통영 앞바다 칠천량에서 왜선을 공격하였다. 이 해전은 명나라 수군이 참여하기 전인데다가 왜군은 대군이어서 참패를 당하게 되었는데, 왜군은 그들이 타고 온 6백여 척의 배를 이용하여 부산(동래)에서 경상도 사천과 전라도 순천 등지로 이동한 후 7월 28일, 좌우군 5만여 명씩으로 편성, 서울과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해 북상하였다.
[한국의병사] 상 이태룡 / 푸른솔나무
초판 1쇄 발행 2014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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