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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성모신앙과 불교사상의 발전
작성자 : 관리자(admin)   0         2021-05-01 01:45:01     103

 

산신신앙의 상징천왕봉 성모사와 노고단 남악사

1천년 전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에는 성모사(聖母詞)라는 사당이 세워져 있었다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인 위숙왕후를 성모로 모신 사당이었다성모는 국토 수호를 위한 산신으로 상징되었다.

지리산의 성모신앙은 신라 때 노고단에 세운 남악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노고단에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모신 남악사가 있었다신라는 국토를 수호하는 다섯 개의 산을 지정하여 오악으로 삼았다남악(南岳)이란 신라 오악 가운데 하나로서지리산을 가리킨다때문에 남악사라는 명칭은 남악의 성모를 모신 사당이라는 뜻이다남악사가 세워진 시기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신라통일 이전의 일이었다.

지리산은 박혁거세의 어머니와 왕건의 어머니를 노고단과 천왕봉에 모시면서성모신앙의 성지가 되었다신라는 매년 이곳에서 봄`가을에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농경문화에서 땅은 만물을 생성하는 것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여기에서 비롯된 신앙이 지모신(地母神)신앙이다.

곧 하늘이 아버지라면 땅은 어머니였던 것이다지리산의 성모신앙은 지모신신앙을 바탕으로 성립하였으며무격신앙과도 얽혀지면서 산악숭배신앙과 깊게 밀착되었다.

산악숭배신앙은 우리 조상의 오래된 신앙이었다그러다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산신은 이제 부처나 보살로 대체되어 산에는 불보살이 상주하고 있다는 사상으로 변화를 겪게 되었다이러한 과정에서 처음에는 무불(巫佛)이 대립하기도 하였으나 서로 조화`융합하게 되어 무와 불이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로 신앙하게 되었다특히 이러한 현상은 지리산에서 극명하게 보인다.

그것은 다름아닌 무당의 조상이나 시조로 여겨지는 법우(法雨)화상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법우화상의 전설은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 전한다.

지리산의 옛 암천사(巖川寺)에 법우화상이라는 이가 있었는데어느날 길을 가던 중 홀연히 산골짜기를 보았더니 비도 오지 않는데 물이 가득히 흐르고 있었다그래서 그 근원을 찾아 천왕봉에 이르러 보니거기에는 몸이 크고 힘센 한 여인이 있어 스스로 성모천왕(聖母天王)’이라 하였다신선인 자기가 인간으로 변하여 그대와 인연을 맺기 위함이고그를 위해 물로써 조화를 부린 것이라 하였다드디어 그들은 부부가 되어 집을 짓고 살면서 8명의 딸을 낳아 무술(巫術)을 가르쳐 전국에 무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무녀고(巫女考)》에도 신라 중엽 함양의 법우화상이 여덟 딸을 팔도에 보내어 무당을 삼았다는 내용이 보인다법우화상 전설은 승려가 지리산신과 혼인하여 무당의 시조로 변모하는 내력을 말해준다.

김종직은 1472(성종 3) 8월 17일 천왕봉에 올라 세 칸 건물의 성모묘에 술과 과일을 차려놓고 날씨를 맑게 하여 지리산의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성모에게 기원하였다그 내용이 기록된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사당 안 벽에는 승려 두 분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가운데 목에 갈라진 금이 있는 성모의 석상이 있다목은 고려 말 왜구가 칼로 석상을 쪼갠 것을 마을 사람들이 다시 붙여놓은 것이다.”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 성모가 석가의 어머니 마야부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성모를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로 생각하였다그 후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천연(天然)이라는 스님이 성모상을 부수어버렸는데이후 다시 성모상을 만들어 음사를 계속했다고 한다성여신(1546~1632)의 유두류산시(遊頭流山詩)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서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산신으로 모셨다는 기록 또한 무불의 습합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다구체적으로 현재 지리산의 봉우리 중에는 제석봉반야봉 등 불교와 관련한 이름들이 전해옴을 알 수 있다.

산신숭배신앙은 수목신앙과도 관련이 있다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는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다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이러한 수목신앙은 삼한시대의 소도신앙과도 관련이 있으며이후 마을 어귀의 성황당서낭당이나 사찰입구에 세워지는 장승으로 연결된다특히 지리산 일대 사찰의 입구에는 장승이 세워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이것은 결국 지리산의 성모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불교가 본격적으로 수용되면서 지리산 자락에는 많은 사찰과 암자승려들의 수도처가 만들어졌다불교는 부처의 말과 마음을 공부하는 교종과 선종으로 나누어 발전하게 되었는데지리산은 이들 모두를 포용하는 곳이었다특히 선종 중에서도 북종선과 남종선이 모두 이곳에 정착하게 되어 이후 한국불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지리산 문화권]

저자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출판사 역사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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