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공진화 - 곤충
숲속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십억 마리의 곤충들이 식물들의 소중한 잎을 뜯어먹는다. 그래서 울창한 숲속의 나무는 푸르고 싱싱할 것 같아도 실제로는 수많은 곤충의 공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풍부하고 달콤한 수액을 빨아먹기도 한다. 진딧물류나 매미충류는 바늘같이 긴 입을 줄기의 조직에 찔러 즙액을 빨아먹는다. 나방의 애벌레들은 마술에 걸리기라도 한 듯 열심히 새싹을 먹어치운다. 굴파리류의 애벌레는 잎의 윗면과 아랫면 사이의 좁은 층을 파고 들어가 살면서, 조직 속을 파먹고 구불구불한 흔적을 남기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열매는 열매대로 구멍투성이가 되고, 꽃의 꿀과 꽃가루도 벌과 나비에게 도둑맞는다. 하늘소류는 산란하기 위해서 나무껍질의 약한 곳을 찾게 되고, 나중에는 그 애벌레가 목질부를 갉아먹는다. 또 풍뎅이의 애벌레는 땅 속의 뿌리를 먹기도 하고, 갈구리흰나비의 암컷은 잘 익은 냉이의 씨앗에 알을 낳으며,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씨를 먹고 자란다. 식물은 열매나 잎사귀에 많은 영양분을 저장하기 때문에 곤충들은 열매와 잎을 먹는다. 그러다가 다 자라 번식기에 들어서면 어느 날 아침 성충으로 깨어나 다시 잎을 먹는다. 그래서 어떤 식물은 곤충의 공격에 대항하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즉 독이 있는 털이 나거나 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한 잎, 그리고 독성 물질 분비 따위의 방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물이 살아남게 되는 것은 그 양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알려진 전체 곤충류의 반은 살아있는 식물을 먹이로 하고 있고, 어떤 고등식물도 그들의 공격을 면할 수 없다. 식물을 먹지 않을 때라도 곤충은 몸을 지키기 위해, 휴식을 위해, 또 번데기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식물을 이용한다. 나비와 나방은 애벌레 시절에는 한여름의 삼림에 많은 손해를 줄 만큼 탐욕스럽게 먹어치우지만 성충이 되면 식물의 자손을 늘려주는 화분 매개자가 된다. 사람들은 이런 관계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필연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식물은 식물끼리도 경쟁을 한다. 식물들은 살 장소와 먹이를 얻기 위해 이웃 식물과 투쟁을 벌이며 꽃을 피운다. 그리고 자손을 더 많이 퍼뜨리려고 달콤한 꿀과 꽃가루로 곤충을 유혹한다. 또 씨를 만들어내면 운반해주는 곤충을 찾는다. 예를 들면, 이른 봄에 피는 얼레지 꽃은 ‘앨리아솜’이라는 먹을 수 있는 지방질 껍질로 씨를 감싼다. 개미는 씨들을 땅 속의 굴에 모아놓고 앨리아솜을 갉아먹음으로써 운반하는 수고의 대가를 얻는다. 씨는 앨리아솜만 없어지면 개미들에게 버림받는다. 그리고 얼레지 씨는 다음해 봄에 싹을 틔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식물과 곤충은 상호 의존적이라 식물과 곤충의 관계는 너무나 복잡하다. 먼 옛날부터 오랜 세월 동안 식물과 곤충은 함께 진화해왔다. 특정한 식물의 개화기와 특정한 곤충의 번식기는 서로 일치되어 있다. 아주 조그마한 우연이 필연으로 맺어졌는지도 모른다.
[식충식물의 세계] 전의식, 김정환 / 도서출판 도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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