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휴면과 발아
입김을 불어 민들레 솜털을 날려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씨앗이 곳곳으로 멀리 퍼져 간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매우 현실적인 점에서 볼 때 휴면기는 씨앗이 오랜 기간 동안 퍼져갈 수 있게 해준다. 씨앗을 어떤 특정시점, 즉 발아에 꼭 알맞은 조건이 형성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옮겨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씨앗의 수명이 긴 식물은 자신들이 사는 시기와 장차 다가올 좋은 성장의 계절 사이에 겨울철이나 가뭄, 그 밖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더라도 그 자손이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홍수나 화재, 혹은 특정 연도에 모든 어린 식물을 휩쓸어버릴 만한 우연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피해를 입지 않고 위험을 막을 수 있다. 휴면기의 씨앗이 그대로 흙속에 남아 다음의 기회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종자식물은 예측 불가능한 혹독한 기후나 변화가 심한 기후에서 명확한 진화상의 이점을 누렸다. 이는 석탄기의 바위투성이 메마른 고지대에서 씨앗이 진화되었다는 빌 디미셀의 이론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러한 지대에서는 휴면기가 있는 씨앗이 짧은 수명의 경쟁자 포자식물에 비해 또 다른 분명한 이점을 누린다. 또한 휴면기를 두는 것이 왜 열대우림을 제외한 거의 모든 환경에서 탁월한 씨앗 전략이 되는지도 이것으로 설명된다. 열대우림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늘 우호적인 날씨가 이어지며 씨앗의 입장에서는 부패, 해충, 포식자의 더 큰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곧바로 싹을 틔우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식물이 맨 처음 휴면기를 생각해냈을 때 그저 씨앗을 일찍 떨어뜨린 것 말고는 별달리 한 일이 없었다. 이렇게 다 익지 않은 상태로 떨어진 씨앗으로서는 특별한 적응방식이 있을 수 없었다. 발아할 준비를 갖추기까지 좀 더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파슬리를 재배하려고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이런 방식을 따르는 종들도 있다. 이럴 경우 싹이 트기까지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작은 배아는 뿌리가 밖으로 나올 만큼 커질 때까지 씨앗 내부에서 여러 날 동안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다수 식물은 씨앗의 수분 양이 95퍼센트나 줄어 바싹 마를 때까지 더 오래 씨앗을 매달고 있는 습성을 개발했다. 이는 씨앗의 물질대사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단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우선은 건조화가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곧이어 씨앗의 휴면은 신비에 가까울 만큼 매우 복잡한 여러 전략으로 진화되었다. 일반적으로, 그리고 이 책에서도 휴면은 포괄적인 의미로 규정된다. 씨앗이 다 익은 다음 싹이 나올 때까지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떤 정지 상태로 있든 모두 휴면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캐럴 배스킨 같은 전문가는 단순히 활동하지 않는 씨앗과 엄밀한 의미의 휴면 상태에 있는 씨앗 사이에 중요한 차이를 둔다.
“진짜 휴면 상태에 있는 씨앗은 쾌적한 온도와 촉촉한 토양에 두더라도 발아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다시 말해서 휴면 상태의 씨앗은 그저 빈둥빈둥 앉아서 비와 햇빛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배스킨이 정의하는 휴면 상태에서는 씨앗이 싹을 틔우는 순간을 늦추기 위한 갖가지 다양한 방법을 써서 적극적으로 발아를 막아야 한다. 씨앗에게 중요한 것은 발아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의는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휴면 상태를 통해 씨앗은 날씨, 햇빛, 토양조건, 그 밖의 환경을 구성하는 다른 요인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교한 방법을 터득한다. 온대지방에서 가장 일반적인 전술은 온도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 전술에서는 씨앗이 봄에 싹을 틔울 준비를 갖추기 전에 겨울의 긴 한기를 거쳐야 하고 이어 날씨가 풀리는 기간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전략에서는 종종 일조 요구량을 함께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 일조 요구량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특정화 되어 있다. 어떤 야생 겨자는 깊이 180센티미터나 되는 눈밭 속에서도 햇빛의 각도와 길이 변화에 반응하고, 많은 숲 식물 종들은 그늘없이 환한 햇빛(싹을 틔우기에 좋은 조건)과 잎을 통과하여 내려오는 적외선 파장의 차이를 인식한다. 휴면상태의 씨앗은 어떤 조건이 필요하든 특정 조건이 충족되기 전까지는 발아하지 못하며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지음 하윤숙 옮김, 에이도스
2016년 10월 17일 초판 3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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