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동물 간의 의사소통
식물과 동물 간의 의사소통
식물은 태어난 장소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으므로, 외부세계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때로는 공기나 물을 이용하지만, 식물은 대부분의 경우, 특히 방어나 번식과 같은 미묘한 목적을 위해 동물을 우편배달부로 이용한다.
식물의 방어전략
곤충이 잎을 갉아먹으면 식물은 공격자의 신분을 확인한다. 식물은 특별한 화학물질을 생성하여 맛없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심지어 독성을 띤 잎을 만든다. 식물은 에너지낭비를 막기 위해 억제물질의 생성장소는 공격받는 잎과 그 주변의 잎으로 국한한다. 최소한의 물질로 곤충에게 겁을 주어 쫓아낼 수 있다면, 굳이 전면전을 펼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식물은 매우 치밀하고 계산적이다. ‘문제해결에 필요한 자원의 최소량은 얼마인가?’가 최대 관심사이므로, 굳이 사생결단을 하고 침략자에게 덤벼들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잎사귀 한두 개를 맛본 곤충이 먹기를 포기하고 날아가버리면 그만이다. 이 같은 계산과 전략은 거의 대부분 성공한다.
곤충이 화학물질 살포에 개의치 않고 계속 잎을 갉아 먹거나 새로운 곤충이 가세한다면 식물은 좀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모든 잎에서 억제물질을 분비하거나, 공기 중으로 휘발성 화학신호를 내뿜어 이웃 식물들의 동참을 촉구한다. 심지어 식물이 응원군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천적을 불러 초식곤충을 물리치는 이이제이 전략을 쓰기도 한다. 식물은 초식곤충의 천적을 휘발성 화학물질로 꾀어 보디가드로 이용하는데, 이런 수법은 에너지를 별로 소비하지 않고 탁월한 효과를 얻는다.
이이제이 전략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식물은 리마콩이다. 리마콩은 점박이응애의 공격을 받으면 휘발성 화학물질의 혼합물을 분비하여 칠레 이리응애를 불러들인다. 칠레이리응애는 육식성 진드기로, 점박이응애와 같은 초식성 진드기를 잡아먹어 이내 씨를 말려버린다. 적의 공격을 인식하고, 그 천적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리마콩의 행동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 외에도 옥수수, 토마토, 담배 등의 식물이 이런 전략을 이용한다.
초식동물과 식물 간의 생존경쟁은 무려 4억년 동안 계속 되어왔다. 식물과 곤충간의 끊임없는 갈등은 양쪽 모두에게 엄청난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그들의 형질을 결정함과 동시에 시간적 공간적 분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곤충의 공격과 그로 인한 손상에 대처하기 위해 식물은 일련의 방어전략을 개발해왔다. 그것은 식물과 초식동물의 공진화를 초래했다.
오래된 옥수수 품종(야생종)은 옥수수근충의 유충이 뿌리 근처에 모여들면 카리오필렌이라는 물질을 생성하는데, 이 물질의 기능은 단 하나다. 바로 선충이라는 작은 벌레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불려온 선충은 옥수수근충의 애벌레를 배불리 잡아먹음으로써 옥수수를 기생충에서 해방해준다.
인간은 자위능력이 없는 품종을 육종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옥수수근충으로 인한 손실은 매년 10억달러에 이르는 실정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옥수수근충은 옥수스를 끈질기게 괴롭혀왔고 농부들은 큰돈을 들여 수천 톤의 살충제를 공중에 뿌렸다.
식물의 성
식물의 자가수분은 동물의 근친생식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근친생식은 새로운 유전자조합이 탄생하는 기회를 줄이므로 식물은 자가수분을 억제하기 위해 일련의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예를 들면, 같은 개체 안에서도 암술과 수술의 성숙기를 달리하게 된 것이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로 운반해줄 믿을 만한 매개체를 필요로 한다. 풍매화들은 수분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수많은 꽃을 피워 엄청난 양의 꽃가루를 공중에 날린다. 이 방식은 고대의 겉씨식물들에 의해 주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 속씨식물들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식물들은 대부분 동물 매개자에 의존한다. 동물은 바람보다 꽃가루 수집 및 배달 임무를 훨씬 더 정확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꽃가루 배달에 흔히 이용되는 동물은 곤충이며 이들에 의존하는 수분 방식을 충매수분이라고 한다.
곤충은 노동을 하고, 식물은 꿀이라는 독특한 화폐를 지불한다. 꿀은 동물들이 사족을 못쓰는 달콤한 고에너지 물질이다. 도마뱀, 박주, 꿀벌 같은 모든 동물들은 꽃을 방문하여 꿀을 먹거나 수집하는데, 그 과정에서 온몸이 꽃가루 범벅이 된다. 그리고 볼일을 마친 동물들이 다른 꽃을 방문할 때, 그들의 몸에 달라붙은 꽃가루도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곤충들은 꽃의 종과 무관하게 인접한 꽃들을 이곳저곳 방문하여 꿀을 먹거나 수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곤충들은 그런 지조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루종일 동일한 종류의 꽃(아침에 처음으로 방문한 꽃)을 방문한다. 곤충에게 이 같은 종충성을 유도하는 요인은 뭘까? 식물학자들과 곤충학자들은 한 마리의 벌이 아침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종의 꽃들만 계속 방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장소 충실성은 매우 중요하다. 기껏 꿀을 생산하여 곤충에게 대접했는데, 꽃가루 범벅이 된 곤충이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린다면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장소충실성은 곤충의 자발적 행동이 아니라 식물에 의해 유도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식물이 무슨 방법으로 곤충의 장소충실성을 유도하는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 알레산드라 비올라 행성B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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