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적 식물
식물의 근단이 다양한 자극을 인식하여 반응을 나타내는 섬새한 감각기관임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과학자는 다윈이다. 그는 근단이 외자극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뿌리 윗부분에 신호를 보내 운동을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근단을 자르면 뿌리의 민감성이 저하되어 중력이나 흙의 밀도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도 했다. 글하여 다윈은 뿌리의 생리학을 창시함과 동시에, 1세기 후에 뿌리-뇌 가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뿌리가 식물의 생존에 중요함을 깨달은 이상, 뿌리의 생리학을 창시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다윈은 일찍이 식물의 뿌리가 의사결정과 통제능력을 보유했음을 간파했다. 뿌리의 말단, 즉, 근단은 뿌리의 성장을 지휘하며, 수분 산소 영양소의 탐색임무를 수행한다. 우리는 흔히 뿌리가 물을 찾거나 아래를 향하는 것을 자동반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뿌리가 수분을 탐지하여 그쪽으로 향하거나, 중력에 이끌려 아래쪽으로 자라는 것은 매우 단순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뿌리의 기능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근단은 동시에 다양한 과업들을 수행하고 다양한 욕구들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근단은 토양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평가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산소 무기염류 수분 영양소는 여러 곳에 분포하고, 때로는 제각기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은 오른쪽에 있는데 반해 질소는 왼쪽에 있을 수 있고, 물을 흡수하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만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려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뿌리는 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상반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뿌리는 표적을 향해 뻗어나가는 동안 장애물을 만나거나 다른 식물, 기생충과 같은 적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장애물은 우회하거나 돌파하고, 적은 회피하거나 물리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뿌리의 국지적인 요구사항과 식물 전체의 요구사항이 다른 경우에는 타협과 조정도 필요하다.
이처럼 식물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며, 그중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식물의 삶은 복잡하고 어려운 의사결정의 연속이며,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겨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이 고도의 지능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근단은 뿌리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생장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뛰어난 감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활동전위를 기반으로 강력한 전기활성을 나타내며, 동물의 뇌신경과 유사한 전기신호를 발생시킨다. 근단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매우 작은 식물조차 무려 1,500만개 이상의 근단을 갖고 있다. 각각의 근단에는 시시각각으로 중력, 기온 습도 전기장 빛 압력 화학적 기울기 독성물질의 존재 소리와 진동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 등과 같은 다양한 정보가 입력된다. 근단에 입력된 정보의 목록은 엄청나게 길지만, 완성되려면 아직 멀었다. 과학자들은 매년 이 목록에 새로운 항목들을 추가한다. 근단은 이러한 정보들을 분석하여, 식물의 각 부분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식물 전체의 입장에서 뿌리를 뻗을 방향을 최종 결정한다.
각각의 근단은 데이터처리센터다. 하지만 각각의 데이터처리센터는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수백만 개의 다른 데이터처리센터들과 연결되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수백만 개의 근단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므로, 주요부분이 파괴되거나 포식자에게 먹히더라도 네트워크는 와해되지 않는다. 개별 근단의 계산능력은 미약하지만, 마치 미천한 개미들이 다른 개미들과 힘을 합쳐, 자연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구조화된 사회를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뿌리들이 서로 힘을 합치고 행동을 조율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생물은 계산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편에서는 세쿼이아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고성능 뇌를 진화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을 방불케 하는 분산지능을 진화시켰다. 인간을 비롯한 척추동물은 전자에 해당되고, 식물과 곤충은 후자에 해당된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 알레산드라 비올라 행성B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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