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나무
만물 창조와 관련된 수많은 신화는 나무를 중심 요소로 삼는다. 노르웨이 신화에서는 위그드라실 (Yggdrasil, 하늘. 땅.지옥을 연결한다는 거대한 물푸레나무)이 세상의 중심축이었다. 이 나무의 뿌리는 땅의 정령들이 살고 있는 지하 세계를, 수간(樹幹)은 중간에 있는 인간 세계를, 그리고 가지는 하늘에 있는 신들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아프리카의 몇몇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다양한 지역, 다양한 종류의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아프리카 남서부의 호텐토트(Hottentot) 유목민족에게는 하이치-에이비브(Heitsi-Eibibi)라는 위대한 영웅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거대한 나무'라는 의미의 하이지브(Heigib)에서 따온 것이다.
유대교의 신비철학인 카발라(Kabbala)의 전설에서 중요 상징물은 세피로스(sephiroth,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는 천국에 있는 생명의 나무)이다. 세피로스에는 신성(神性)이 담겨 있다. 생명의 나무에 가지런히 매달린 열매는 신성의 상징이며, 열매들을 연결하는 부분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뜻한다. 부처가 득도한 보리수나무는 세상의 축과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며 초기 도상학(圖像學. 화상.조상(彫像) 등에 의한 주제의 상징적 제시법)에서는 부처 자체를 의미한다.
시아파(派) 이슬람교에는 현실에 신비로움이 더해지는, 더 없이 행복한 상태를 일컫는 하키카트(hakikat)라는 말이 있다. 이 하키카트는 일곱번째 천국 너머까지 자라는 나무를 상징한다. 인도 전설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신은 나무의 뿌리로 나타난다. 수간과 가지는 창조주 곁에서 순수한 영혼으로 자라난 고대사회를, 나뭇잎은 인간을 상징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간이 더욱 높게 자라자 뿌리와의 직접적인 관계가 약화되었다. 인간이 다시 한 번 이 길을 찾도록 돕기 위해 많은 예지자-아브라함, 부처, 예수, 마호메트-가 세상에 왔다. 그들은 평화와 사랑,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저마다 새로운 가지를 펼쳤다. 이 가지들은 더욱 작은 가지로 나뉘어 수많은 언어와 종파, 문화, 종교, 그리고 사상을 낳았다. 혼란이 권세를 얻어 나무의 숨이 막히게 했다. 하지만 나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신성한 본질을 담은 씨앗을 퍼트렸다.
나무가 뿌리를 통해 땅에서 힘을 얻는 반면 인간은 하늘의 신성에서 힘을 얻는다.
생명의 나무가 거꾸로 서 있는 수많은 그림에 이와 같은 역설이 나타나 있다. 베단타 철학(인도철학의 한 형태로 우주와 인간이 한 몸이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을 견지한다)의원전과 우파니샤드(옛 인도의 철학서)에서 우주는 뿌리가 하늘을 향하고 가지가 땅 속으로 뻗어가는 거꾸로 된 나무로 표현된다. 이 거꾸로 된 이미지에서는 가지가 뿌리 역할을 하고 뿌리가 가지 역할을 해 생명력을 땅에 전달한다.
이와 비슷하게 라플란드(스칸디나비아반도의 북부지역)인들은 해마다 식물의 신에게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 나무의 윗부분은 땅으로, 뿌리는 공중으로 향해서 제단 옆에 놓았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떤 부족은 주술사들이 거꾸로 심은 마법의 나무를 상징적인 의미로 의식에 사용했다.
나뭇잎은 해마다 떨어져 다시 돋아난다. 이는 죽음의 의미를 일깨우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진화를 상징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무를 심는 전통이 있는 문화도 많다.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는 고결, 성숙, 책임 등의 특성을 담고 있다.
무한한 부활의 순환은 또한 다산(多産)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인도에 이르는 중동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이따금 샘 옆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가 눈에 띠게 된다. 그 나무에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는 여인들의 소망을 담은 빨간 손수건이 달려 있다.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Dravida)족은 사람 부부의 본보기가 되도록 나무를 '결혼'시키는 풍습이 있다. 부부 나무는 신성한 나무 두 그루, 즉 수나무와 암나무를 나란히 심는다. 그런 다음 별 탈 없이 자라서 풍부한 열매를 맺으라고 나무 부부 주위에 울타리를 친다. 그래야 사람 부부도 자녀를 많이 낳는다고 생각했다.
북미의 수(Sioux)족과 남서 아프리카의 부시맨(Bushman)족, 호텐토트족은 결혼을 앞둔 남녀가 나무와 먼저 약혼한다. 보통 열매를 맺는 나무가 의식에 이용되며, 이는 결혼하는 부부가 나무의 다산성을 나누어 받기 위해서이다. 북오스트레일리아의 와라뭉가(Waramunga)족은 나무에는 모래알만한 영혼이 깃들여 있고 이것이 여자의 배꼽을 통해 자궁 안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독일 힐데스하임시(市)의 마르디 그라(MardiGras, 참회. 화요일. 사육제 마지막 날)에서는 임신하기를 바라며 전나무 가지로 여자를 내리치는 전통이 있다.
[나무의 치유력]
패트리스 부샤르동 지음 /박재영 옮김
이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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