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림의 쇠퇴
이렇게 주민과 같이 마을과 주민을 지킨 마을 숲이 망그러져 서낭당이 없어지기는 한민족의 압박시기인 일제시대와 민족의 대시련기인 한국전쟁 혼란기, 새로운 정신과 물질문화를 지향한 새마을운동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일제치하에서 가장 많이 소실되었는데 일제가 태평양전쟁 중에 전쟁물자 수급을 위해 전국의 숲을 벌목하고 마을의 당제나 동제가 그들의 식민정책에 커다란 불안 요소로 작용하자 발원지인 마을숲을 제거함에 숲과 함께 서낭당이 사라졌다.
다음으로 한국전쟁은 군주둔지나 군사적 목적으로 무참하게 숲이 망그러졌고 끝으로 새마을운동은 농촌 마을에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며 이때 마을 어귀의 숲길을 가로질러 도로를 건설함으로 마을숲이 없어지고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마을 서낭당의 전국적인 철거작업이 행하여졌다. 이로 인하여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숲의 당산목인 신목이 제거되어 숲이 없어지면서 아름다운 풍속과 단합, 화해의 마당인 동네의 두레나 동제마저 사라져갔다. 최근에는 생활이 조금 넉넉해지면서 숲 주변에 음식점, 상가, 유원지가 생기면서 숲이 파괴되고 도로개설과 하천제방공사 등으로 숲이 망그러지고, 얼마 안남은 마을의 공동소유로 보호되어 온 숲조차 점차 개인 소유화 되면서 다른 목적으로 소멸되어 보기 힘들게 되었다.
최근에 존재하는 성황림마저 과보호와 환경보존차원에서 숲을 보호하는 명목 아래 둘러쳐진 철책 등으로 변화를 가져와 주민과 접촉이 쉽지 않게 되었으나 동강 주변에서는 외지와 두절된 상태에서 외롭게 살아와 아직도 민중 가까이 있고 주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숲과 종교] 신원섭편 / 수문출판사
'동강의 성황림' 이수용 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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