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문화의 뿌리에 닿아 있는 세계수
우리 조상의 삶 속에 들어와 민족 문화의 상징이 된 세계수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나무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이처럼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통로로 생각했을까?
왜 세계수의 일종인 서낭나무나 당산나무를 과학문명이 맹위를 떨치는 오늘날까지도 신처럼 섬기고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나무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무의 특성은 장구한 수명과 거대한 몸체를 들 수 있다. 마을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서 수백년 이상 마을을 지켜오고 있는 생물은 나무 외에는 없다. 마을의 온갖 역사를 속속들이 지켜보았을 나무의 장구한 수명, 거대한 덩치에 선조들이 가졌을 경외심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두번째 특성은 해마다 봄이 되면 새로운 싹을 틔우고, 가을이면 잎을 떨어뜨리는 영속성이다. 영속성은 다른 말로 우주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당산나무를 우주수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주의 리듬이란 태양계의 순환 주기에 따라서 해와 달이, 그리고 절기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주기적 현상을 말한다. 조상들에게는 수백년 동안 절기에 따라 변함없이 나타나는 나무의 영속성이 태양이나 달이 보여주는 우주의 리듬처럼 신비로웠으리라.
세 번째는 매년 수많은 열매를 맺는 다산성이다. 농경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활동은 식량 생산이었다. 그래서 조상들은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의 생산력을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만이 가진 이러한 생물적 특성 외에 한국인의 자연관에서도 나무 숭배의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한국인의 자연관은 도교, 불교, 유교, 음양오행설,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한 동양철학이 혼합된 자연조화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우리 민족은 엄청난 토목공사가 벌어진 근대화 이전까지 자연개조나 극심한 자연파괴 없이 자연과 풍토에 순응하면서 수천년을 살아왔다. 자연을 대하는 이와 같은 생활자세는 자연조화문화로 발달했고, 또 자연스럽게 산, 강, 바다, 불, 나무 등을 숭배하는 자연숭배의식으로 발달하게 된 것이다.
나무와 관련된 우리의 정서적 근원은 이처럼 수천년 동안 이 땅에 터잡아 살아오면서 민족의 삶 속에 용해된 정신적 뼈대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고유의 자연관과 나무의 독특한 특성을 각별하게 인식했던 조상들의 정서적인 여유는 깊이를 더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숲과 한국문화] 전영우 수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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