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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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인정사정 없어
하늘은 높고 산속 물도랑엔 또랑또랑 물소리도 맑아요. 그 곁엔 어느새 피어난 물봉선이 붉디붉은 얼굴을 펼쳤어요. 흔한 가을의 풀꽃이지만 존재감을 알리기에 모자람이 없어요. 꽃 모양을 가만히 살펴보니 정면과 측면이 많이 달라요. 앞에서 보면 풍만하고 화사하게 웃고 있지만 옆에서 보면 조금은 기괴하기도 해요. 입만 크고 몸집은 볼품없는 아귀 같다고 할까요.
꽃이 파이프처럼 좁아져 도르르 말린 뒤쪽에 꿀샘이 있어요. 곤충이 거기로 찾아오라는 신호가 꽃잎 안쪽의 희고 노란 무늬와 붉은 반점이예요. 박각시 한 마리가 호버링으로 꿀을 빨고 있어요. 날개를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여야 공중에 떠 있을 수 있겠지요. 여기 꿀벌도 찾아오지만 아주 길쭉한 혀를 가진 박각시가 훨씬 유리할 것 같아요.
아직은 꽃이 피어나는 때지만 익어가는 열매도 가끔 보이네요. ‘꼬투리 잡다’라는 말이 있지요. 꼬투리를 잡으면 실체가 밝혀지잖아요. 이 꼬투리는 콩의 꼬투리에서 왔는데, 콩과 식물의 특징이 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수축하는 힘에 의하여 씨앗이 튕겨 나가는 거예요. 봉선화과의 물봉선 역시 튕겨 나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요. 열매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스프링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아요. 떨어진 씨앗은 둥근 형태로 물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어느 물가에 자리를 잡겠지요. 물봉선은 동물의 손에 후손의 번식을 맡기지 않아요. 세상 자존심이 무척 강해 보이지요?
물봉선 열매는 때가 되면 터지는데 인정사정이 없어요. 곤충이 찾아왔다가 튕겨 나가면서 낭패를 당하는 동영상을 보았어요. 어느 때 어느 곳에 마주치면 다가설 곳인지 물러날 곳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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