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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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의 숲에는
오감의 숲에는
계절은 한여름으로 달려와 장마의 한가운데 섰습니다. 늦게 찾아온 장마가 꽤나 매섭네요. 가까운 상림에 나가보니 컴컴한 숲이 습기 속에 통통 불어 있습니다. 우렁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계절의 성깔처럼 다가옵니다. 막혀 있던 답답한 것들을 뻥~ 하고 털어내는 정화작용이기도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치유의숲 폭포에서도 마주하는 시원한 여름 풍경입니다. 이처럼 숲은 사시사철 변화하면서 출렁이고 있습니다.
장마에 든 여름 숲은 특유의 냄새가 온몸을 감쌉니다. 나무와 풀의 종류마다 서로 다른 화학물질들, 비에 젖은 나무 둥치와 풀숲 바닥의 흙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들 때문이겠지요. 다양한 생명과 그 흔적들이 남겨 놓은 냄새들도 있겠군요.
숲은 각종 테르펜과 미생물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천연의 화학공장이라 하지요. 이 냄새는 우리의 동물적 감각을 일깨우는 가장 예민한 감각 중의 하나고요. 냄새는 후각신경을 통해 본능적인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로 바로 들어가죠. 그러니 반응이 금방 나타날 수밖에요. 인류사에서 향수나 아로마 오일이 한결같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와 관계가 있을 겁니다.
식물은 여러 종류의 테르펜을 갖고 있습니다. 테르펜은 우리가 피톤치드라고 말하는 식물 속의 화학물질을 두루 일컫는 이름이지요. 나무에 침입하는 균들을 죽이거나 물리치는 자기 보호 수단이랍니다. 숲에 들어가면 다양한 냄새를 맡을 수 있잖아요. 그것은 나무마다 내놓는 테르펜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나 참나무 등 특정한 나무들이 많으면 그 숲의 냄새도 달라질 수 있겠지요.
우리가 숲에 들어갔을 때 머리가 맑아지며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잖아요. 나무가 내놓는 피톤치드와 꽃향기, 토양의 미생물이 내놓는 지오스민(Geosmin), 그리고 시기에 따른 숲의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냄새들 덕분이죠. 이때 우리의 뇌파 중에 α-파(8~12Hz)가 향상되어 심신이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군요. 당연히 불안감과 우울증 해소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여름 숲은 냄새의 절정기가 아닌가 싶네요.
장마에 들어 온통 젖어있는 함양상림의 중앙숲길
햇빛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풍경들은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한데요. 숲은 시각적으로도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각을 통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데, 시각은 인류 진화의 빛나는 유산이지요. 우리의 시각은 빛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햇빛은 전자기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은 가시광선뿐입니다. 일곱 가지의 색 중에서도 초록색(490-570nm)의 파장이 눈의 피로를 잘 풀어준다고 하는군요. 식물이 반사하는 초록색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오래된 감정인가요? 얼마나 흔하디 흔한 은혜로움인가요?
강렬한 햇빛이 적당히 차단되는 숲의 잠잠한 환경에서는 눈의 동공이 확장된다고 합니다. 동공의 확장은 자율신경 중에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었을 때 일어납니다. 몸이 이완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럼 심장박동 및 혈압이 안정되고 감정 기복이 가라앉으면서 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지겠지요. 집중력이 생기고 두뇌활동이 빨라지니 사색하는 힘이나 판단력이 높아지고요. 숲에서의 집중력 향상은 여러 연구 결과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숲이 보이는 교실에서 시험을 친 학생들의 성적이 높게 나오고, 도심 숲이 우거진 곳에서 교통사고나 폭력 사건도 줄어든다고 하니까요. 실제로 저도 치유의숲에서 일하면서 뒷목이 뻐근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조용한 숲에 나가 거닐다 오면 훨씬 심신이 안정되는 것을 느껴보곤 한답니다.
◁광양 백운산 치유의숲 숲길 ▷영동 민주지산 치유의숲 계곡
숲에서는 온갖 소리가 들려오지요. 자연의 소리 또한 우리의 심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치유인자랍니다. 자연의 소리는 주파수(50 ~70db)가 일정하고 고정된 패턴이 없어서 귀에 거슬리지 않아요.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게 하지요. 이 역시 우리의 뇌에서 알파파의 활성을 돕는답니다. 몇 해 전에 지리산 대원사 계곡의 능선에 올라 저 아래서 올라오는 물소리, 솔숲의 새소리와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충만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이 능선에서 성철스님이 좌선을 했다고 합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적당한 햇빛, 그리고 온갖 생명의 소리와 자연의 풍경이 있는 곳은 바로 숲입니다. 오감의 숲에 나서는 것은 오래된 치유 행위이기도 하고요. 현대인을 위협하는 질병은 암, 심장질환, 뇌질환 순서라고 하지요. 이 모두 혈관이 탁해지며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는군요. 스트레스도 크게 한몫을 하겠지요.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1847~1931)은 100년 전에 이미 이 시대의 자연치유를 예언했습니다. “먼 훗날 의사는 약 처방 없이 환자들에게 음식, 공기, 물, 운동법을 이용하여 적절히 처방을 할 것이다.” 그 참 놀랍지요?
*이 글은 [주간함양]에 '치유공감'이란 주제로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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