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
함양 상림 공간입니다.
함양상림의 역할
풍수해 방지의 숲
함양상림은 하천의 선상지라는 자연환경을 개척하여 살기 좋은 마을로 바꾼 아주 좋은 예이다. 위천에 범람하는 홍수를 막기 위해 하천둑을 따라 숲을 만들었다. 백운산에서 시작하여 함양읍을 거쳐 흐르는 위천의 물은 홍수가 나면 매우 사납게 흘렀다. 함양상림은 이 홍수로부터 함양읍의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문화의 숲
마을숲은 높고 넓은 수관이 시원한 그늘 공간을 만든다. 이 속에서는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이 벌어진다. 농사 중에 쉬기도 하고, 절기에 따른 명절에는 놀이도 한다. 주민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이기도 하다. 마을숲은 조성에 관한 유래나 전설, 영웅담, 조상숭배 등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마을공동체와 함께해 온 오랜 숲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전설이 되는 이 이야기는 신성과 영웅적 모티프를 지니게 된다. 주민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어 숲에 대한 애착과 사랑으로 나타난다. 이 상징성은 숲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민들은 그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아왔으므로 마을숲의 유래와 전설을 잘 알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지역적 특성과 사연을 지닌 다양한 전설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함양상림에는 최치원과 관련된 유래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숲을 이룬 선생의 공덕은 대를 이어 전해왔다. 숲의 유래와 전설은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들이 뭉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함양상림에 관한 전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금호미 전설이고 하나는 해충 전설이다. 금호미 전설은 선생이 금호미로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뒤 나뭇가지 어디엔가 이 호미를 걸어 두었다는 이야기이다. 해충 전설은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영원불멸의 신선 모티프(motif)를 담고 있다.
금호미 전설은 숲을 만든 선생의 권위를 신성하게 하는 영웅적 모티프를 갖고 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주민의 생활을 보듬어 안고 천년을 상생해 온 마을숲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영원한 공덕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전설이 되었다. 이러한 전설은 주민들의 가슴에 옹심이로 자리 잡았다. 동심어린 아이들은 숲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들어 금호미를 찾았다. 학생들의 소풍 때는 금호미 찾기 행사도 했다. 사운정 곁 개울에는 금호미 다리를 만들었다. 숲 건너편 공원에 금호미 조형물도 만들어 놓았다.
해충 전설에는 어머니에 대한 선생의 깊은 효심이 드러나고 있다. 선생의 어머니가 숲에서 산책하다가 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를 본 선생은 숲으로 달려가 “뱀이나 개미 같은 해충은 모두 없어져라! 그리고 다시는 이 숲에 들지 마라!” 하고 외쳤다. 그 이후로 숲에서 모든 해충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전설 속 영웅적 인물에 대한 효심을 교훈으로 물려 주고 있다. 이것은 유·불교를 통틀어 굉장히 중요한 공동체 사회의 가치였다. 사실 현대 사회에 더 필요한 교훈이다. 그런데 해충이란 표현에는 유감이 남는다. 생태계의 한 종(種)은 그물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선생이 숲을 만들어 놓고 떠나면서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뒷날에 이 숲에 뱀·개구리·개미가 생기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스스로 나면,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줄 알아라.” 이 이야기는 선생의 죽음에 대한 전설적인 영원성을 담고 있다. 도가적 신선 사상의 한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숲을 만든 구체적인 내력에 대한 전설도 있다. 선생이 고을의 풍수해를 막기 위해 지리산과 백운산(함양 읍내로 이어지는 제일 큰 산줄기)에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캐어다가 강둑에 심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상림은 선생이 하루아침에 심었고, 하림은 부인이 하루아침에 심었다는 설이다. 상림이 없어지면 선생이 죽은 것이고, 하림이 없어지면 부인이 죽은 것이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상림과 하림이 나누어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 전에는 하나의 숲으로 이어진 대관림이었다. 대관림 조성에 관한 유래와 금호미 전설, 해충 전설은 모두 최치원 선생을 연결고리로 서로 겹치면서 나타나고 있다. 전설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살아 움직인다.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동안 살이 붙고 가지를 치기 마련이다. 어쩌면 금호미 전설과 해충 전설은 처음에는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주민은 상림에는 요즘도 해충이 없다고 믿고 있다. 또 어떤 주민은 40~50년 전에도 뱀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사실은 상림 숲에 뱀도 개구리도 개미도 다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함양 사람들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서양 종교의 영향을 덜 받은 예전에는 이 믿음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여기서 오랜 전설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려는 주민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전설이라는 허구를 만들어 믿으려 했을까? 그것은 하나의 관념일 수도 있지만, 미지에 대한 불안이나 저항할 수 없는 힘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위안이었는지도 모른다.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튼튼한 접착제였는지도 모른다.
금호미 전설과 해충 전설은 선생에 대한 존경과 신성을 강조하는 영웅담으로 볼 수 있다. 이 전설이 허구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심적 위안과 고운 심성에 교훈을 주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을 갖게 하였다. 공동체와 개인을 보호하고 천년숲을 보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토속신앙의 숲
마을숲은 마을의 구심점으로 상징성을 지닌 복합문화 공간이었다. 주민들은 새해 초나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숲의 당산에 함께 모여 당산제를 지내왔다. 이런 행위는 마을의 단합과 숲을 보호하는 힘이 되었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냉수 한 그릇 떠놓고 소원을 빌기도 했다. 마을숲은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무사안일과 평안을 염원하는 장소였다.
함양상림에는 오래전부터 당산이 있었던 것 같다. 『함양구비문학』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2006년 함양읍에 사는 정윤식 씨가 구술한 내용이다. “함양상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우물이 있는 길목에 돌무더기 당산이 있었다. 이 당산은 병자년 태풍에 훼손되었다. 그래서 당산을 옮겼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경로당 회장님을 중심으로 함양읍 전체의 당산제를 모셨다.”
이로 볼 때 상림 숲에서 당산제가 끊어진 지 몇십 년 지난 것으로 보인다. 상림 숲 남쪽 도로 가까운 곳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경계라인을 둘러놓은 곳이 있다. 19인정이 있었다는 바로 근처이다. 여기 커다란 고목이 베어진 그루터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곳이 마지막으로 당산제를 지내던 곳이 아닌가 싶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예전에 상림우물 곁에 있었다는 돌무더기 당산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예전에는 함양 읍내에서 병곡·백전면으로 가는 사람들은 상림우물을 반드시 거쳐 다녔다. 이때 이곳은 함양 읍내로 들어오는 길목이 된다. 길목이란 문(門)의 역할을 한다. 경계지역으로 안과 밖을 구별 짓는다. 예전부터 이런 곳은 통과의례의 장소가 되었다. 그곳의 지신(地神)이나 수호령에게 통행을 알려 기운을 조화롭게 하는 예를 올리는 것이다. 돌무더기에 돌을 던지거나 올려놓는 행위이다.
종교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엘리아데의 글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집의 문지방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지방을 넘어갈 때 문지방을 향하여 절을 하거나 몸을 엎드려 경건하게 손을 대는 의식을 한다. 문지방에는 외적의 침입뿐 아니라 악마나 페스트와 같은 질병을 막는 수호령이 있다. 그 수호령에 예를 갖추는 것이다. 여기서 문지방이 곧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경계이다. 마을의 입구나 중요한 길목에 당산을 두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당산나무를 심거나, 돌탑, 장승, 솟대 등을 세우고 통과의례 의식을 하도록 했다. 옛 어른들이 문지방을 밟지 말라고 했던 말은 다 이유가 있었다.
휴양치유의 숲
숲속의 공기, 물, 햇빛, 바람, 자연경관, 특별한 장소 등은 치유 인자가 된다. 우리 인체에 생리·심리적 작용을 일으킨다. 숲에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고 즐길 수 있다. 많은 종류의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을의 낙엽 소리, 한겨울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풀잎이나 나무껍질,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나무가 내놓는 방향 물질을 느낄 수 있다. 피톤치드로 대표되는 테르펜류는 진정효과가 있어 심신을 안정시키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공기를 정화한다. 숲은 강한 햇빛으로 들어오는 자외선을 차단하여 부드럽게 하고, 빛의 입사에 따른 신비로움을 연출하는 등 숲속의 미세 경관 요소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경관 요소는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여 심리적 긴장을 풀어 안정되고 여유로운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숲은 바라보기만 해도 긴장이 풀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숲의 생명작용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적 요소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 오감으로 느끼는 숲의 생기가 심리적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다고 느껴지는 마을숲도 늘 바라보는 주민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텍사스A&M대학교 울리히의 관찰연구를 보면 녹지공간이 보이는 병실에 있는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회복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난다. 이후 숲이 많은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왔다. 스트레스 해소와 면역계의 기능이 향상되었으며, 대화를 더 많이 나누고, 사회적 유대나 결속력도 높아 더 행복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며, 범죄율 또한 낮다는 것이다.
풍성한 잎이 우리에게 주는 녹색의 기능과 역할이 있다. 우리의 마을숲이 조상 대대로 살기 좋은 마을을 이루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는 위요 경관은 어머니의 품처럼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안과 밖을 구분하여 적당히 가려서 숨겨주는 은신처 역할을 한다. 이것은 숲에서 탄생한 인류의 본능이기도 하다.
함양상림은 해발고도 171~180m에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안개가 잘 끼지 않는다. 숲의 맑은 공기, 낮은 자외선과 부드러운 햇빛, 밤낮의 온도차, 낮은 안개일수는 휴양하고 운동하기에 알맞다.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연결된 산책로는 약 4km에 이른다. 숲 안쪽으로는 중앙숲길과 중간중간에 작은 오솔길들이 나 있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함양상림의 숲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훌륭한 위요경관이 되고 있다. 특히 노인들이 생활하면서 산책하기 아주 좋은 숲이다.
낙엽활엽수로 이루어진 함양상림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봄이면 온 숲이 보드라운 연두색 물이 들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울창하고, 가을이면 저마다의 단풍 빛깔이 조화를 이루고, 겨울이면 아름드리 몸통을 드러낸 고목들을 마주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빠르게 변해가는 숲의 다양한 옷차림은 새로움을 준다. 숲속에는 여기저기에 개울이 흐르고 있다. 숲 서쪽에는 위천이 흐르고 있다. 물소리는 우리 인체에 이완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음이온을 내놓는다.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세로토닌을 증가시켜 우울증을 예방한다. 필요에 따라 상림숲을 걸으면 만족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가족, 친구, 지인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다.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다. 홀로 쓸쓸한 마음을 달랠 수도 있다. 상림의 다양한 생물상을 통해서 사진, 그림, 글쓰기 등의 활동으로 상당한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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