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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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문
경계의 문
세상에는 다양한 경계가 있습니다. 경계는 마주 보는 둘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접촉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 속에 갈등이 일기도 하고 교류와 통제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경계는 경우에 따라 상충하기도 상생하기도 하는 절묘한 자리입니다. 서로 다른 것이 오가는 문(門)입니다.
생명이나 조직은 모두 안과 밖의 경계를 갖기 마련입니다. 아(我)와 피아(彼我)의 구분이 있는 것이지요. 안과 밖의 소통은 문(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람 간의 소통은 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요새를 이루는 성(城)은 성문을 통해, 면역은 면역세포를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옛 마을은 길목을 지키는 당산(나무, 돌무더기, 솟대, 장승 등)을 통해서 통과의례를 치뤘습니다. 일종의 정화의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숫자의 세균과 바이러스, 곰팡이 등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놀랍게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을 지키는 방어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방어벽은 피부입니다. 두 번째는 면역세포입니다. 면역세포는 해로운 외부 물질이나 비정상적인 세포에 대해 저항하거나 제거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T세포는 통행증을 확인하고 저항하는 역할을 합니다. NK세포는 킬러 역할을 합니다.
성(城)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시설입니다. 군인들이 침입한 적군과 싸우는 것이 면역세포의 역할과 같습니다. 전쟁에서 성이 뚫리면 그 지역은 무너지고 맙니다. 인체에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만병이 찾아옵니다. 면역이나 국방이나 자신을 지키는 역할은 같습니다.
예전의 마을에도 경계의 문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 의미의 요소가 따로 작동합니다. 마을 입구에 당산을 세워 외부의 잡스러운 기운을 정화합니다. 마을 어귀, 뒷동산, 고갯마루 등도 경계를 이루는 장소로 같은 의미를 둡니다. 이런 장소를 중심으로 하거나 경계로 하여 지역이나 마을 공동체와 안팎을 구별 짓습니다.
마을의 길목은 경계이면서 출입문입니다. 예전부터 이런 곳은 통과의례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곳의 지신(地神)이나 수호령에게 통행을 알리는 의식을 치뤘습니다. 돌무더기에 돌을 던지거나 올려놓는 행위로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엘리아데는 집의 문지방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문지방에는 외적의 침입뿐 아니라 악마나 페스트와 같은 질병을 막는 수호령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수호령에 예를 갖추는 것이나, 돌무더기에 돌을 올려놓는 행위나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고 보니 옛 어른들이 문지방을 밟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이러한 것을 미신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서로 다른 경계를 넘나들면서 예(禮)와 정성을 다 하는 선조들의 예쁜 마음으로 여기면 좋을 듯합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삼가는 마음이 곧 수행이기도 하니까요.
문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문제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두 눈을 부릅뜨고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문을 잘 지키려면 방어벽을 튼튼히 하고 나와 남을 잘 구분해야 하겠습니다. 받아들일 것은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내칠 것은 사정없이 내쳐야 하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도 경계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입[口]입니다. 입은 소통의 문이지만 재앙의 문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잘못 받아들여도, 말을 잘못 내뱉어도 문제가 커집니다.
구화지문(口禍之門)!
우리는 통과의례를 하듯 늘 마음의 예를 지켜야겠습니다. 면역세포를 제 자리에 불러세워 몸의 성을 튼튼히 쌓아야겠습니다. 이것이 경계의 문에 열쇠를 쥐는 길이라 여깁니다. 새해 코로나를 비롯해 숱한 경계의 문 잘 열고 닫읍시다.
*이 글은 [주간함양]에 '치유공감'이란 주제로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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