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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인류
사바나 인류
인류는 어디에서 태어났을까요? 그곳은 아프리카의 사바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종류의 풀들과 키 작은 나무들이 띄엄띄엄 모여 있는 열대의 숲이죠.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 나뭇잎은 동물들에게 수분 공급을 하기도 합니다. 이 나무들은 휴식처도 되고 먹이도 되는 거의 절대적인 생활공간인 셈인데요. 사바나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는 5월에 꽃향기가 우리 산야를 수놓는 아카시나무 말고 진짜 아카시아와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도 있답니다.
먼 옛날 아프리카의 사바나 환경에서는 영장류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두 발로 걷기 시작하는 영장류가 짠~ 하고 나타난 것이지요. ‘루시’라는 영화에도 나왔던 바로 그 인류 진화의 순간입니다. 직립 보행하는 최초의 원시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하죠. 아직 계통이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우리의 조상입니다. 500만 년 전에 일어난 대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그 원시인류가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아프리카를 뛰쳐나왔고,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 글로벌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문명을 일군 인류는 풍성한 숲의 혜택을 받고 성장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발전은 모두 숲에서 온 것이니까요. 이 풍성하고 은혜로운 숲은 우리의 무의식에 저장된 생명의 안식처이자 활력소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초고속의 문명은 코스모폴리탄이라는 거대도시를 낳았지만, 사바나의 숲에서 살았던 놀랍고도 먼 기억들이 우리 몸속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사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숲에 대한 원초적 본능이 꿈틀대고 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윌슨은 이것을 ‘바이오필리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숲에서 태어나 자연을 사랑하고 의존하는 인자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숲의 모성에 끌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바나 초원을 연상시키는 전남 곡성의 평원
우리는 외부환경에 대한 정보를 시각에 87%나 의존하고 있답니다. 그 어떤 동물보다 강력하죠. 인류가 시각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지금의 문명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에너지 사용과 피로도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때 숲속의 풍성한 초록 잎을 보면 눈의 피로가 내려가고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스트레스가 풀어지고 면역기능이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릴 때 학교의 칠판이 모두 초록색이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초록색은 붉은색과 반대편에 있으면서 서로 보충해 주는 보색이라고 합니다. 초록색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위로해 주지만, 붉은색은 흥분하고 각성시키는 효과를 준다고 하지요. 그래서 병원의 수술실에서는 초록색을 많이 이용한답니다. 우리는 유달리 초록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시각이 발달하기 훨씬 전에 생긴 오래된 본능일 겁니다. 사바나의 들판에서 살았던 영장류, 혹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초록색의 내적 각인은 그만큼 강력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 유전자의 바탕색일 거라는 믿음이죠. 원시인류가 태어나서 바라본 첫 풍경이, 풍족하고 안전하게 삶을 이어줄 공간이, 활동하고 잠들던 그 모든 환경이 초록색이었으니까요.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풍경 속에 다른 색을 마주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라고 합니다. 거대 도시화는 불과 200여 년 전에 일어났으니까요.
초록색의 숲에서는 다양한 인자를 통해 생리적 치유효과를 얻을 수 있답니다. 그 사실은 파동의 공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봄의 양자이론은 숲과 우리 몸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인체의 DNA 분자, 세포와 조직은 고유의 양자 파동장을 이루고 있는데, 숲의 치유 인자들과 우리 몸의 주파수가 서로 다르더라도 공명을 통해 파동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프랙탈(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의 세부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태) 속성으로 숲과 우리의 관계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몸 전체의 혈관은 나뭇가지를, 뇌의 혈관은 나무뿌리를 닮았어요. 소뇌의 단면은 양치식물 잎사귀와 닮았다고 해요. 뇌 속의 신경세포 뉴런의 전기자극을 보면 번개 치는 것 같답니다. 일본 생리인류학회 회장인 사토 마사히코는 “인간의 생리기능, 그러니까 인간의 뇌, 신경계, 근육, 폐, 소화기, 간, 감각계 모두 자연환경에서 진화하여 자연환경에 맞게 만들어졌다.”라고 하니 조금 더 이해가 쉽습니다.
생명은 모두 자연과 같은 속성을 몸속에 지니고 있답니다. 사실 우주 만물이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자연은 깊은 내면에서 서로 소통하고 있답니다.
사바나의 숲에서 진화해 빌딩 숲으로 이동해 온 현생인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갖 스트레스에서부터 환경성 질환, 심리적 불안, 고병원성 바이러스 등 문제는 많군요. 이때 숲을 찾는 것은 생명의 오래된 치유행위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오감은 이미 알아차립니다. 인간은 숲을 발판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숲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기나긴 코로나의 발발로 우리의 기후 환경과 숲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먼 기억의 바다에서 사바나의 바이오필리아를 건져 올려봅시다.
*이 글은 [주간함양]에 '치유공감'이란 주제로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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