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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로 자라는 것은 나를 세우는 과정
오늘숲길
큰나무로 자라는 것은 나를 세우는 과정
졸참나무 도토리가 뽀얀 햇잎을 밀어내었어요. 지난 가을 포식 동물의 눈길을 벗어난 도토리겠지요? 대지에 뿌리 박고 납작 엎드려 한겨울을 지나왔어요. 그렇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아름드리 큰나무가 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련을 넘어야 할지 몰라요. 곤충이나 초식 동물의 먹이, 햇빛이나 물이 모자라 죽는 고사(枯死), 풍수해나 산불 등 기후 환경의 변화를 이겨내야 하니까요. 숲의 일원으로 어깨를 맞댄다는 것이 참 가혹하게도 힘든 일이네요. 졸참나무는 이 불확실에 대비하기 위하여 해를 걸러 도토리를 수많이 맺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겠지요.
도토리 어린싹이 고개를 빼꼼 내미는 순간 숨 막히는 달리기가 시작됩니다. 재빨리 자라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지거든요. 첫째, 낙엽활엽수 아래 태어난 도토리는 숲이 우거지면 햇빛을 받기 힘들어요. 둘째, 광합성을 할 만큼 잎을 빨리 키워야 방어물질인 페놀이나 탄닌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 오직 한 마음으로 달릴 수밖에요. 맨 처음의 일은 꺼질까 날아갈까 불안하기 짝이 없네요.
몇 해 전 졸참나무 새싹이 자라는 걸 관찰했어요. 새싹이 이틀 만에 몰라볼 만큼 자라나 햇잎을 내었어요. 다시 6일이 지나자 잎이 완전히 펼쳐져 초록색이 되었어요. 도토리 새싹은 초봄에 1년 동안 자랄 몸무게의 80%까지 자란다고 하더군요. 과연 잔인한 봄의 사투라 할 만합니다. 맨 처음의 불안하고 두려운 이 고비를 온 힘으로 밀고 나가야 다음 생존의 기회가 열린다는 사실! 목적지는 또 하나의 출발선일 뿐이지요. 숱한 목적지를 지나 스스로 땅을 딛고 섰을 때 큰나무라 부를 수 있겠지요. 졸참나무 도토리가 큰나무로 자라는 것은 나를 세우는 과정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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