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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 하나에서 비롯한 거야
10여 년 전인 거 같아요, 느티나무 열매를 처음 본 것이. 나무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은 것에 놀랐어요. “아 그래서 그동안 못 봤구나!” 사실 겉보기만 훑고 다닌 탓이지요. 아이들한테는 호기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관찰하라고 말하면서. “에고~ 뭐냐?”
느티나무 열매는 햇가지 끝 촘촘한 잎 사이에서 조롱조롱 매달려요. 콩알보다 훨씬 작은데 짱구처럼 뒤틀린 각이 있어요. 푸른 잎 사이에서 재빨리 양분을 받아먹고 쑥쑥 자라던 열매는 단풍잎과 함께 노란 물이 들어요. 이젠 엄마 품을 벗어날 때가 된 거지요.
씨앗의 희망을 가만히 바라보아요. 이렇게 작은 씨 하나가 천년 세월, 정자나무가 된다니! 진화를 거듭하는 생명 작용이 얼마나 심오한가 싶어요.
느티나무는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어요. 민족의 나무 문화를 꽃피웠고, 우리의 무의식에 신령스러움을 심어주었어요. 고고학 동영상을 보다가 ‘인류 문화는 누적의 문화’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이때 누적의 정신 문화사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생각나네요.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은 한 마디 한 마디씩 쌓아 올린 수행의 아름다운 결정체라 해요.
거창 원천리에는 천연기념물 느티나무가 살아있어요. 가슴높이 둘레가 8미터, 어마어마하지요. 이 나무 한 그루의 품이 작은 생태계를 이루어요. 그리고…… 오랜 세월 주민들의 가슴에 때론 신성을 때론 안녕을 품어주었어요.
하늘 같은 땅 같은 몸통에 기대어 숲을 올려다보아요. 멧비둘기를 키워낸 빈 둥지도, 금방 쉼터를 찾아든 물까치도, 허물을 벗은 매미 흔적도 보여요. 때론 너그러운 할아버지, 때론 숭고한 모성 같지 않겠어요. 각성과 배움의 시간. “그래, 이 나무도 작은 씨 하나에서 비롯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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