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큰나무 여행 공간입니다.
습지는 생명을 품고
꾀꼬리가 새끼를 품고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 6월 중순 새벽 4시 30분 간단한 짐을 챙겨 완사 습지로 향한다. 이웃한 지인이 희귀한 생명의 타이밍을 이끌어 주었다.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둥지를 보여주었기에 이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거지.
밝아오는 새벽의 기운이 어둠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있다. 신선한 초록의 바다처럼 펼쳐진 버들숲은 안개로 가득한데, 그 미지의 숲속에서 맑은 새소리가 또르르 튕겨 나온다. 신새벽의 산소같은 청량감이 묻어나니. 가슴으로 밝아오는 고요한 아침!
며칠 새 꼬물꼬물 알에서 깨어나 바알간 목젖을 내미는 꾀꼬리 둥지 앞에 섰다. 거대한 습지는 아직 졸고 있건만, 꾀꼬리 엄빠는 벌써 분주한 하루를 열었다. 축 늘어져 앙상한 버드나무 가지를 부여잡은 둥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통째로 흔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들잎 한 가지가 절묘하게 둥지를 가리고 있으니. 타인의 시선을 과감하게 감추어버리는 보안성! 지형지물을 살펴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는 예민함! 꾀꼬리는 조심성이 아주 많은 새라 한다. 그런데도 저렇게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암수 서로 정답구나.
꾀꼬리는 꼭두새벽부터 먹이를 나르느라 여념이 없다. 잠시 잠깐 사이 둥지에 드나드는 모습을 두어 차례 본다. 드나들 때마다 가지 전체가 휘청거린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둥지에 앉아있기도 한다. 이처럼 꾀꼬리는 공동 육아를 하니, ‘엄빠’라 불러보는 거지. 엄빠가 둥지에 와서 앉으면 새끼들은 자동적으로 하늘을 향해 목구멍을 벌린다. 그렇구나, 확실히 목숨은 목구멍에 걸려있구나!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상수원보호구역을 걷는다. 유월의 밤꽃이 한창이다. 특유의 밤꽃 냄새가 아침 공기에 섞여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무의 꽃이 귀해지는 유월 중순, 무더기로 피어나는 꽃들은 곤충들에게 무한한 위로를 주어. 밤꽃에는 수많은 곤충과 애벌레가 꼬여 든다.
화창했던 봄의 열기로 야생의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 새들에겐 또 다른 밥상이 풍성하게 차려지니. 숲 가장자리에는 벚나무 열매인 버찌,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지천으로 떨어져 내린다. 먹을 것이 많은 판에는 거상(巨商)의 발걸음이 잦은 법이지.
다시 돌아와 꾀꼬리 둥지를 관찰한다.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는 생명의 존재가 경이롭기만 한데~ 생명을 품은 습지는 모성의 샘물 같다. 가장자리에 고인 손바닥 연못에 버들가지가 들어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생명을 품은 달덩이 같은 얼굴! 성년을 앞둔 부들 잎이 빳빳한 고개를 드는데, 개구리들은 개굴개굴~ 정겨운 합창을 한다.
마을에선 밥값 하는 닭이 홰를 치니, 눈치 보던 개도 컹컹 짖고 있다. 어느덧 안개가 걷히며 하루의 햇살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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