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큰나무 여행 공간입니다.
섬 바다 그리고 여명
바다는 현실에 닿아있고 심산은 이상을 추구하는가? 남녘의 해안가, 동쪽 바다를 향해 에렉투스의 양면석기를 닮은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쨍하게 맑은 날이다. 잔잔한 바다에 그려지는 투명한 파문들, 그 바다 너머로 거제와 통영의 산자락이 올망졸망 경계선을 둘렀다.
저녁놀에 덩달아 물이 든 동쪽 하늘, 조업하는 배들도 환한 불빛을 반짝인다. 창공엔 물새들이 귀소하니, 태고의 빛을 좇는 지구별의 생명들! 나도 자리를 옮겨 하룻밤 몸을 누일 잠자리를 찾는다.
해안가에서는 고립된 산골과 달리 밤바다를 즐길 수 있어 좋다. 시야가 확보되어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일 테야. 풍족하고 안전한 공간은 사바나 인류의 오래된 경험 속에 있어, 그들은 해안을 따라 동으로 동으로 내달려 왔다.
한가로운 밤바다를 보고 가만히 앉았다. 유월 초, 언제 그랬냐는 듯 밤바람은 선선하기만 하다. 야생의 새소리를 따라 밤은 깊어 가고 나는 고요의 바다를 응시한다. 진화를 이어온 생명의 바다, 낮은 곳에서 품어주는 수용의 바다, 순간과 영원을 잇는 대승의 바다! 한 무리 구름 사이로 꿈꾸는 별들이 반짝~ 빛을 보낸다.
하룻밤, 나만의 공간에 누웠다. 야생이 교차하여 쉬이 잠들지 못하고, 새벽 세 시 지척에서 뱃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뒤 파도가 밀려와 바위를 때린다. 느릿느릿 출렁이고는 이내 사라지는 고막에 남을 소리. 삽시간의 너울 소리를 스테레오로 듣는구나!
다섯 시쯤 깜빡 눈을 뜨니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 밤새 고요했던 바닷결 만큼이나 맑은 하늘이 붉으레한 기염을 토한다. 주변에 온갖 새들도 신이 났다. 분주히 움직이는 배들, 바다는 동이 트기도 전에 활기를 찾는다.
밝아오는 여명에 원근의 섬들이 서로 어깨를 겹친다. 관찰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섬의 군상들. 섬은 해류의 들숨과 날숨에 따라 허리춤을 가눌 운명이다. 그러면서 스치는 온갖 동물과 새들, 지나가는 바람하고 관계를 맺는다. 외로움 타는 것은 관찰자의 심정일 뿐. 섬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하나의 대지를 이룬다. 생명의 토대가 되어 스스로 일어선다.
동이 틀 때 가장 어둡다고 했든가. 여명의 아우라가 점점 밝아오더니, 눈부시게 투명한 태양이 이마를 내민다. 한순간의 타이밍은 그렇게 절묘하구나! 길게 누운 능선 위로 황금빛 햇살이 피어오르고, 나는 경이로운 관찰자가 된다.
생생한 아침은 길고 진한 여운으로 남고, 나는 또 그렇게 낯선 하루를 연다.
⎯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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