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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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하룻밤
텐트 밖은 안전할까?_03
호수와 하룻밤
호수는 심연의 거울! 바람만큼 파문으로 응답하지. 맑으면 맑은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그러하니 계절과 날씨, 주변 환경에 따라 거울의 변화는 무쌍할 수밖에 없지.
이제는 초여름 호수를 느껴 볼 때.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집에서 가까워 미리 정해 둔 곳, 큰 골짜기 호수(대곡저수지)에 나왔다.
호숫가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아 텐트를 쳤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장소성과 목적은 중요하겠지. 한평생으로 이어보면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옛사람들이 잠은 가려서 자라고 했던가?
이내 땅거미가 내려앉아 산그림자를 품은 호수, 나는 호젓한 둘레길을 걷는다. 앞산에도 뒷산에도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알싸하고 달콤한 꽃내음, 보풀보풀 밤꽃 향기가 달빛처럼 피어오른다.
온갖 야생의 생명들이 태어나는 풍요와 번식의 계절. 아직은 나무의 꽃들이 꼬리를 물고 피어난다. 7월엔 나무의 꽃이 드물어지니. 금은화, 조록싸리, 작살나무꽃들이 옮겨놓는 발걸음에 쌓인다.
비탈진 호수 둑엔 이제 막 피어나는 개망초가 하얀 별무리를 이루었다. 구한말 농민들의 기억에 무성하고 망측스러웠던 낯선 잡초. 고유한 생명의 눈길로 바라보면 밤하늘의 별이 된다는 사실. 초저녁 반짝이는 개밥바라기별을 바라보는 심정을 알까?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사무치는 경험이 서로 통하는 것이니!
적막한 밤공기가 선선하다. 고요를 깨우는 앞산의 뻐꾸기, 뒷산의 소쩍새. 소쩍새는 오래된 향수를 부른다. 옛말에 소쩍새 소리가 많이 들리면 풍년이 든다고 했지. 솥 적다~ 솥 적다~ 애를 태우니 머지않아 우리 솥에는 쌀밥이 넘쳐날 거야. 우리 선조들은 간절한 희망을 신명 나는 이야기로 풀어냈구나!
어둠 속 호수는 어느새 풀벌레 소리로 가득하다. 풀잎에 이슬방울 같은 초여름의 소리, 그 야생의 정취가 싱그러워 나는 한잔의 차를 끓인다.
밤이 깊어 휘이 휘이 구슬픈 휘파람 소리를 내는 호랑지빠귀. 어둠을 쫓는 그 소리에 선잠이 달아나. 나는 텐트를 열고 고요히 잠든 호수를 바라본다. 길 건너 가로등이 일렁이는 불빛, 60년을 흔들려 온 내 삶의 궤적(軌跡). 호수에 비추어 보는 나의 눈동자인가 싶다.
야생의 아침은 새소리에 깨어나나니. 나는 덩달아 몸을 일으킨다. 아하! 시골 사람들이 부지런한 이유를 알겠다. 어둠이 걷히는 호수 둘레길에 나섰다. 물은 우리에게 태고의 안정감을 준다. 심연을 두드리는 생명의 고향. 무엇이든 품어주는 모성의 거울.
호수에 들어선 솔밭이 말간 세수를 하는데. 나는 솔잎으로 빗질하듯 잠이 덜 깬 정수리를 씻는다.
⎯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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