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
함양 상림 공간입니다.
항일의사 김한익과 하승현
김한익
생존기간 1890. 9.13 ~ 1933. 6.30
출생지 경남 함양
운동계열 3.1운동
훈격(연도) 애족장 (90)
공적내용
경상남도 함양(咸陽)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의 함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만세운동을 계획하던 중, 3월 28일의 함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동하던 정순길(鄭淳吉)·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이에 격분한 그는, 다음 장날인 4월 2일을 이용하여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인근지역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그는 4월 2일 아침 일찍 자기 집에서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가지고 장터로 나아갔다. 오후 5시경, 3천여명의 장꾼들이 이에 호응하자, 그는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행진하였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28일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341·342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257·1258면
하승현
생존기간 1895. 7.21 ~ 1919. 4. 2
출생지 경남 함양
운동계열 3.1운동
훈격(연도) 애국장 (91)
공적내용
경상남도 함양(咸陽)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의 함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28일의 함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동했던 정순길(鄭淳吉)·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사실에 분개한 김한익(金漢益)에 의하여 계획되었다. 이소식을 들은 그는 이에 적극 찬성하여, 4월 2일 아침 일찍 장터로 나아갔다. 오후 5시경, 3천여명의 장꾼이 모이자, 김한익이 자신이 만든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장터 중앙에 쌓아 놓은 소금가마니 위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자, 3천여명의 군중은 독립만세를 따라 외쳤으며 그는 선두에 서서 장터를 시위행진하였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김한익이 체포되어 가자, 격노한 시위군중은 헌병분견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그는 윤영하(尹榮夏)와 함께 분견소 정문을 박차고 돌진하였다. 그러나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헌병의 야만적인 무차별 사격으로 그는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5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3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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