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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잎을 보라
햇잎을 보라
3월의 숲은 무채색 손가락들의 적막한 율동이다. 뿌리를 튼튼케 하는 봄바람이 분다. 숲을 흔드는 오후의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부풀어 오르는 나무의 겨울눈이 저마다의 얼굴로 낯설은 인사를 한다. 움트는 겨울눈은 역동적인 힘이 있다. 지난여름부터 채곡채곡 눌러서 갈무리하고, 정교하게 가방을 정리한 내면의 힘이다. 강력한 힘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햇잎의 보드라운 율동. 4월에는 나직한 숲길을 걸으며 그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보라!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봄의 기운을 느껴보시라!
봄 숲의 햇잎 중에서도 유달리 눈길을 끄는 나무가 있으니. 그중 셋을 한번 살펴보자. 첫째, 나도밤나무는 털복숭이 손가락 같은 겨울눈이 그대로 부풀어 햇잎이 된다. 중앙맥을 따라 반듯하게 접힌 모습이 참빗 같기도, 정교한 깃털 같기도, 촘촘하게 뻗은 나방의 더듬이 같기도 하다. 우중충한 솜털이 떨어져 나가면서 점점 밝아지다가 어느 순간 연초록 물결을 이룬다. 햇살에 비추어 보는 연초록 실핏줄에는 탱탱한 생기가 흐른다. 둘째, 사람주나무는 겨울눈이 터져 나올 때 짙은 자줏빛 형상이 참새 혓바닥 같다. 조금 자라나면 밝고 투명한 속살이 신비로운 빛깔을 보여준다. 그저 평범한 겨울눈 속에 어쩌면 이런 색감이 감춰 있었을까? 햇살에 비추어 보는 속살에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한 세계가 있다. 셋째, 때죽나무는 작고 보잘것 없던 겨울눈이 어느 순간 눈부신 변신을 꾀한다. 조그맣게 돋아나는 햇잎은 수많은 별빛이 된다. 햇살에 비추어 보는 별빛은 저 하늘에 빛나는 광대한 우주다.
무언가 새로운 시작은 늘 불안하고 유약하다. 이때는 조그마한 변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수정란의 배아가 발생할 때도 그렇고, 새싹이 돋아날 때도 그렇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기운이 조성될 때(일, 사람, 장소, 생활의 큰 변화 등등)를 조심하라고 한다. 나의 기운이 새로운 것과 충돌하고 조율하면서 출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감한 변화의 시기, 처음이 중요하다. 보드라운 햇잎의 변화를 따라 마음에 온기를 채우고 감성을 일깨우자. 처음처럼! 부드러운 것은 살아나는 ‘우리’고 딱딱한 것은 죽음의 ‘무리’라 한다.
*이 글은 이코노뉴스 숲길칼럼에 연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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