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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의 세금 내는 나무 금목신
고성의 세금 내는 나무 ‘금목신’
이름 속에 잠자고 있는 민속·문화적 가치
우리나라에는 세금 내는 나무가 셋 있으니, 경북 예천의 석송령과 황목근이시고 나머지 하나는 경남 고성에 있는 금목신이시다. 석송령은 소나무, 황목근과 금목신은 팽나무라고 한다.
지난겨울 일이 있어 고성에 들렀다가 금목신을 찾았다. 국도 14호선에서 빤히 보이는 마암면 평부마을 입구에 있다. 높이는 25m, 몸 둘레는 4.5m라 하니 기골이 장대하다. 멀리서 보는 수형도 가지런하다. 다가가 살펴보니 그 자태와 위용이 대단하다. 비스듬히 드러누운 몸통에는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꿈틀꿈틀 용솟음치며 동쪽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같다. 이름을 들여다보면 ‘금목신(金木神)’은 신의 반열에 오른 나무다. 엄청난 유명세를 누리는 석송령도 감히 오르지 못한 경지다. 금목신은 민속·문화적으로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왜 그런지 이름에 얽힌 유래를 하나하나 짚어서 끌어내 보자.
평부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삼신목 또는 전승목이라 부른다. 고성문화원에서 펴낸 『나무가 들려주는 고성 이야기』에는 삼신목에 얽힌 삼락리의 유래를 적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안동김씨와 연일정씨가 살면서 삼신락정(三神樂亭)이라는 정자목을 심봉하여 당산제를 모셨다. 이 삼신이란 산신(山神), 수신(水神), 목신(木神)으로 삼신의 은덕으로 인해 마을이 평화롭고 집집마다 태평하게 살 수 있다고 믿어 이곳 지명을 삼신의 三자와 낙정의 樂자를 따서 삼락(三樂)으로 하여 오늘의 삼락리가 된 것이다.”
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고 전한다. 400여 년 전에 벌써 당산제를 지내고 배를 매어둘 정도로 커서 임진왜란(1592년)을 지켜본 나무라 하니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도 금년(2015)으로 423년이 되었으니까 임진왜란을 지켜본 나무였을 것이며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냈던 그때 삼신락정이라는 정자목도 바로 이 나무였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나무가 있던 평부마을 앞쪽은 모두 바다였다고 한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배를 이 나무에 매어두었다. 제1차 당항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을 무찌르며 대승을 거두었다. 장군의 배를 붙들고 전쟁 상황을 바라본 이 나무는 전승목(戰勝木)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승목에 배를 매어 둔 것은 돌발상황(패잔병의 육지 퇴각 등)에 대비한 하나의 군사작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직접 전쟁에 참여한 나무가 아니겠는가?
삼신목(三神木)이란 이름은 이 나무에 또 다른 민속적 가치를 부여한다. 스스로 목신이 되어 마을 뒤로 산맥을 잇는 ‘산신’과 앞바다를 굽어보는 ‘수신’의 역할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삼신은 아이를 점지하는 역할을 하는 삼신할미를 나타내는 삼신과는 다른 의미다. 여기서 삼신목은 산과 바다를 아울러 마을을 잇는 신령스러운 당산나무가 된다.
이 전승·삼신목을 동네 주민들은 당산나무로 삼고 오래전부터 동제를 지내왔다. 그러던 중 1970년 마을 주민 이동수 어른이 논 403평을 내놓으면서 이 나무를 ‘금목신’이라 하였다. 이제 전승·삼신목은 새로운 이름과 재산을 얻어 토지대장에 올랐다. 이렇게 하여 금목신은 세금까지 내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하지만 ‘금목신’이란 이름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포털사이트 검색에도 거의 나오는 자료가 없다. 오히려 전승목을 검색하면 블로거나 뉴스 자료 검색이 된다. 현장의 안내판에도 금목신이란 표기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평부마을 이장과 전화 면담을 해보았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 새벽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금목신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끊임없이 동제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축문도 예전 그대로 읽는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동제를 위해 고성군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군청에서 동제를 지원하는 마을은 두 곳인데 평부마을이 가장 조직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평부마을 사람들의 전승목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마을의 유지였던 이동수 어른이 논을 내놓은 것도 동제가 원활하게 잘 이어져가도록 하는 바람에서였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마을 사람들이 쌀 한두 되씩 내놓는 것을 보면서 동제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어 마을이 화합하고 평안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약 두 마지기의 논에서 한 해 36만원 정도 수입이 들어오고 있다. 금목신이란 이름은 나무를 토지대장에 등록할 때 ‘김목신’이라 적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금목신은 나무의 수종으로 따지면 어떤 나무일까? 지금까지는 고성군에 보호수로 등록되면서 팽나무로 알려져 왔다. 처음 이 나무를 본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수피와 가지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팽나무가 아닌 것 같았다. 2023년 여름 다시 찾아가 잎과 열매를 살펴보니 확실해졌다. 팽나무로 알려진 금목신은 푸조나무였다. 푸조나무는 수피도 잎과 열매도 팽나무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아래 팽나무와 푸조나무를 동시에 비교 확인할 수 있는 잎과 열매 사진을 가져왔다. 잎맥도 열매의 크기와 색깔도 두 나무가 완전히 다르다. 결정적으로 팽나무의 열매는 주황색으로 익지만, 푸조나무의 열매는 검은색으로 익는다.
평부마을 입구 마을숲은 세 그루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가 작아도 마을숲이다. 금목신이 된 보호수 푸조나무 한 그루와 그 곁에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건장한 느티나무 한 그루,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건장하게 서 있는 푸조나무 한 그루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금목신이 된 푸조나무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뒤쪽에 우뚝 선 느티나무는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오래되어 속이 빈 푸조나무의 몸통 사이로 떨어진 느티나무 씨앗이 자라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 보호수 푸조나무의 걸출한 이름이 붙은 순서를 추정해 본다. 처음 삼신목으로 부르다가 이순신 장군과 연결되면서 전승목이 추가되었을 것이고 한참 뒤에 금목신이 되었다. 산신, 수신, 목신은 우리의 오랜 민간신앙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삼신목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마을 이름 삼락리가 삼신에서 왔다는 것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한 나무에 민속 생활 문화의 깊은 의미를 지닌 이름이 셋이나 생겨났다니 예사로이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에 동화하며 마을을 지켜온 우리네 조상님들의 큰나무 철학. ‘네가 나이고 나는 곧 너이니’ 우리는 모두 하나다. 그러니 나무한테도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거다. 한 마을을 지켜온 큰나무의 굵직한 문화적 사연. 세월따라 점점 가치를 더해온 이름 금목신! 이 얼마나 멋진 스토리텔링 소재인가. 평부마을은 당산나무와 동제라는 민간신앙의 전통이 명맥을 잘 유지하며 전승해오고 있다. 그 중심에 삼신목·전승목·금목신이라는 뿌리깊은 사연을 지닌 한 나무가 있다. 평부마을 금목신은 민속·문화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오랜 자연문화유산이다.
최재길 –식물문화연구가-
*이 글은 (사)숲과 문화 연구회에서 발행하는 [숲과 문화] 2023년 7.8월호 32쪽에 실린 내용을 전문 그대로 옮겼습니다.
참고자료
이쌍세. 금목신과 동제 관련 구술. 평부마을 이장.
정해룡. 나무가 들려주는 고성 이야기. 고성군·고성문화원. 2015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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