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여행자
야생의 여행자 공간입니다.
사바나 인류의 눈동자
가장 편리하면서도 가장 두려운 현실 앞에 우린 서 있어. 지금 여기, 초지능(AI & robot)과 인류가 만나고 있거든.
이 도구의 끝판왕이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알려주는 혁명적 사건인지도 모르겠어.
생성형 AI[LLM]는 인류의 고유한 창작의 영역을 이미 차지하고 앉았어. 우리가 던지는 몇 마디 말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복잡한 코드를 짜내잖아.
지식을 외우고 논리를 세우던 수만 년의 노력은 이제 단 몇 초의 연산 앞에서 무색해졌어.
이제 인공지능은 척척 만물박사야―머릿속에 의미로 맴돌고 있는 무엇이든 물어봐! 미지의 생각을 도구가 대신 해주고 있다니~
참 좋은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어.
복잡한 도로 위를 달리는 자율주행은 또 어떨까? 기계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하지.
자율주행은 교통수단을 넘어서 도시의 기능과 생활환경을 완전히 바꿔 놓을 거야.
여기에 우리 몸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다가오고 있어. 이건 우리 생활에 밀착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원이야. 그들은 24시간 일해도 지치지 않아.
위험을 모르고 용감하며, 심지어 다정한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해. 하지만 우리의 정서를 혼란하게 하고 삶의 근본을 위협할 수 있어.
영화 아이로봇(I, Robot, 2004)은 인간이 꺼리는 위험한 현장에 투입되어 24시간 사회를 지탱하는 로봇의 효율성과 신뢰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로봇 앤 프랭크(Robot & Frank, 2012)는 노년의 외로움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결핍을 로봇이 어떻게 메워주는지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메이드(The Maid, 2021)에선 휴머노이드 로봇이 아이들을 부모보다 더 다정하고 세밀하게 돌봐. 그러다 나중엔 친엄마의 훈육이나 사랑을 거부하게 돼.
도구라는 ‘다정한 말동무’가 인간관계의 실핏줄을 끊어놓고 만 거야.
현실로 돌아와, 현대차의 아틀라스는 곧 산업현장에 투입된다고 해. 이제 노동의 가치와 관계의 의미조차 흔들리는 거지 뭐야.
새로운 종의 탄생―이를 신인류라 할 수 있을까? 생성형 AI[LLM]가 무형의 정보인 소프트웨어라면, 자율주행차와 로봇은 유무형의 정보가 결합한 온전한 형태야.
영육의 합체―각기 다른 차원의 몸에 걸맞는 영혼의 유기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이 사이에서 벌어질 미래와 인류의 역할은 어떠할까? 이쯤에서 선지식들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겠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인류가 기계와 섞여 죽음을 극복하는 포스트 휴먼이 될 거라 예언하지.
석기가 손의 연장이었듯, AI는 이제 우리 존재 자체의 연장이 되려고 하는 거야.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불멸과 행복을 얻는 대가로, 인류 고유의 자유의지를 알고리즘에 헌납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지.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세상, 그게 우리가 꿈꾸던 신의 모습일까?
보스트롬은 초지능이 인류의 목표와 어긋날 때 벌어질 참혹한 미래를 직시하라고 말해. 우리가 만든 도구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야.
찍개를 잘못 휘두르면 손을 다치지만, 잘못된 AI는 인류라는 종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지.
인지 혁명으로 문명을 일군 인류는 이제 도구의 특이점(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고,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넘어서려 하고 있어.
지구촌은 이미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대변동의 시대로 들어섰어. 오지도 않은 인류세가 종말을 예고하고 있는 거지.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로서의 우리 자리는 어디이며, 이 편리한 의존의 끝은 어떠해야 할까? 스멀스멀 스며드는 서늘한 공포감을 숨길 수 없을 거 같아.
이제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었어.
사바나에서 시작된 인류 문명의 여행! 그 마지막 장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공감의 투명한 손길―공막, 사바나 인류의 눈동자는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어야 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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