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여행자
야생의 여행자 공간입니다.
모자람을 벗어났더니
인류를 오랫동안―끈질기게 괴롭혔던 건 ‘모자람’이었어. 사바나의 뜨거운 볕 아래서도, 농경지의 거친 흙바닥 위에서도 우리는 늘 배가 고팠지.
어제 쫓았던 가젤이 마지막이었을까? 내일은 또 어디서 마실 물을 찾고, 한 움큼의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
가시덤불을 헤치며 돌도끼를 갈고, 흙 속에 씨앗을 뿌리고 비를 기다리던 수백만 년의 세월! 우리의 땀과 눈물은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절박한 기도였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청동기를 지나 철기시대엔 굶주림을 벗어났을까? 우리의 보릿고개는 1970년대까지 남아있었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몸으로 겪은 사실이야.
인류가 모자람을 벗어난 시기는 언제쯤일까?
18세기,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어. 석탄이 타오르며 뿜어낸 열기는 인간과 가축의 근육에만 의존하던 관성을 단숨에 끊어버렸어.
동력으로 움직이는 산업혁명의 불기둥이 솟아오른 거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내일 굶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튼튼한 발판이 생긴 거야. 기계가 쉼 없이 쏟아내는 물건들 앞에서 우리는 드디어 모자람을 벗어날 수 있었어.
그뿐이 아니야. 예전엔 평생을 가도 닿지 못했을 먼 곳을 며칠 만에 갈 수 있게 되었어. 대량 생산의 힘은 물류의 물길을 텄고, 자본과 사람이 뒤섞이며 도시라는 거대한 생태계가 만들어졌지.
광활한 철도와 거대한 증기선은 운송수단을 넘어서 숨은 의미를 안겨주었어.
철길이 닿는 곳마다 단절의 벽이 허물어져~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던 인류의 활동 범위를 폭발적으로 넓혀놓았고. 과학의 탐구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세계(미시세계와 거시세계)로 번져나갔거든.
증기기관에서 시작된 동력은 전기를 만나고, 보이지 않는 정보의 그물망으로 온 세상을 하나로 엮은 거야.
마침내 과학의 눈은 땅을 넘어 저 먼 우주의 별빛까지 더듬기 시작했어.
유형의 확대 구조는 무형의 심화 현상을 불러오기 마련이야. 사실 세상 모든 물질은 음양으로 나타나는 동전의 양면인 거지.
장(場)의 확장은 인류가 진화하는 공인된 증거로도 볼 수 있어. 넓고 깊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사고의 차원이 달라진 거니까.
결국 산업혁명은 우주로 시야를 넓히고, 우리의 의식을 일깨운 대도약의 발판이 된 거야.
물리적 활동의 장(場)이 사고의 차원으로 들어간 거지.
이제 모자람을 벗어난 인류의 허기는 채워진 걸까? 이건 또 다른 이야기야.
풍요로운 물질적 현상 이면에는 심적―정서적 정서가 충돌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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