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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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떡이는 갯벌에서
펄떡이는 갯벌에서
갯벌의 야생에는 또 어떤 속삭임이 있을까? 해양 습지보호지역인 사천 광포만1에 나왔다. 맨 처음 마주친 장면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인 듯 그려지는 생동감이다.
갯벌 가장자리 성긴 갈대밭에 붉은머리오목눈이 떼가 조잘조잘 몸짓도 가볍구나! 바람처럼 휘날리는 몸짓을 경쟁하듯 나누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건 포식자로부터 살아남으려는 생존본능일 거다. 약한 것일수록 빠릿빠릿할 수밖에. 이들의 분주함은 생명력이 아닐까?
밤은 빠르게 찾아오고, 나는 물 빠진 갯벌을 바라보며 유유히 걷는다. 사그라진 노을 위로 별빛이 영롱한 꿈을 꾸는데. 쟁반 같은 물빛이 어둠을 반사하여 까만 산그림자 눈썹달로 뜬다.
어둠 내린 물속에 왜가리 한 마리 무슨 생각으로 앉아 있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으엑! 으엑! 두 번 신경질을 내곤 자리를 뜬다. 나는 야생의 훼방꾼~ 어둑한 뚝방길 위로 오랜만의 별밤을 만끽하며 나의 하룻밤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밤 성가신? 텐트를 치고 느긋하게 누웠다. 양쪽 창을 다 열었는데도 더운 열기로 후끈하다. 머리맡엔 풀벌레, 산등성엔 소쩍새 소리! 폴리 한 겹의 야생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창호지 한 겹의 초가집에도 살아보았건만, 이제 사람의 집들은 점점 벽을 쌓았고 우리는 야생에서 멀어져 왔다. 밤새 저 건너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우리는 이제 밤낮 가리지 않는 소음의 일상을 살아간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텐트에 누워 영원을 살 것 같은 별들의 반짝임을 올려다본다. 갯벌에선 짱뚱어인 듯 펄떡이며 물을 치는 소리가 잠결에 들려오고. 새벽 시간 문득 고개를 내밀어 뒤늦게 뜬 반달을 보는데, 고사이 초롱초롱 별빛이 눈에 시리다.
새벽 기온이 내려가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한낮에 달구어진 바닥은 식어가는데, 남은 온기가 구들장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 5시쯤 들판에 농약 살포 트럭의 엄청난 소음에 잠을 깼다. 먼 산에 연무가 산허리를 두르고 동쪽 하늘엔 뽀얀 서기로 충만하다. 고요한 새벽 감성을 마주하는 시간!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동안 썰물에 점점 갯벌이 드러나고 있다. 언덕 위에 누운 듯 엎드린 갯잔디 군락이 형용하기 어려운 마법의 양탄자 같다. 희미한 동이 조율하는 초록은 환경변화에 민감하기만 한데. 이 신비로운 양탄자 위로 이따금 하얀 백로들이 날아든다.
지금은 짱뚱어들의 신기하고 깜찍한 생동감에 공감하는 시간. 짱뚱어는 얕은 물 위를 날듯이 뛰기도 하지만, 물 빠진 갯벌에서는 뒤뚱뒤뚱 꿈틀꿈틀 잘도 미끄러져 다니는구나! 좀 다가서려니 게가 드나드는 움푹한 구멍에 재빨리 숨어버린다. 언제 나오려나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퉁방울 같은 눈을 내밀다가 또 쏙 들어가 버리네.
상대를 위협하거나 사랑싸움할 때는 위로 향하는 큰 지느러미를 치켜세우는데 보석처럼 드러나는 점무늬가 아름답구나! 두 마리가 서로 지느러미를 치켜세우고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여기 아침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며 물질하는 백로 한 마리가 있다. 길다란 다리로 겅중겅중 걸음을 옮길 때마다 환상적인 데칼코마니, 무성영화의 흑백필름이 돌아간다. 부족장의 청동검 같은 부리로 수면을 내리칠 때마다 새우 등허리 한 생의 빛을 발하니. 이것이 야생의 한 장면 아닌가!
⎯야생의 여행자⎯
*1 광포만
사천시 곤양면과 서포면에 걸쳐 있다. 2023년 10월 해양수산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3.46㎢에 이르는 광포만은 갯벌의 생물다양성이 서해안과 다른 독특함이 있다. 희귀생물도 많아 겨울에는 재두루미가 돌아오고 여름에는 노랑부리백로가 돌아온다. 국내 최대의 갯잔디 군락이 있어 계절에 따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산자락 바위틈엔 수리부엉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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