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인프라 정비와 도시발전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지방의 많은 유민이 한양 도성으로 모여들었다. 인구가 급증하여 1637년 효종 때 8만명이었던 인구가 10년 만에 두 배가 넘는 19만 명으로 늘어났다. 인구가 두 배 늘어나자 생활 폐수가 많아지면서 하천 오염이 심해졌고, 각종 전염병이 돌았다.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 사용하자 민둥산이 됐고, 비가 올 때마다 산의 토사가 개천으로 유입됐다. 이는 하천의 흐름을 막아서 하천 오염을 증가시켰다. 하천 바닥이 높아지자 비가 조금만 와도 범람하여 청계천의 더러운 물이 우물로 들어가 식수를 오염시켜 전염병을 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조는 1760년 청계천의 준설 작업을 시작했다. 청계천 준설 작업은 도시가 전염병에 맞설 수 있는 인프라 구조를 만든 시도였다. 덕분에 한양은 다시 청계천 하수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었고 19만 명의 인구에도 전염병이 적은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영조 때 한양의 도시 공간 인프라를 재정비한 덕분에 한양에 19만 명의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자 정조 때에 이르러 상업 수요가 폭증했다. 이로 인해 상업이 발달했고 조선 후기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청계천 준설이라는 도시 정비가 인구 밀도가 높으면서도 전염병에 강한 도시 공간을 만들었고, 새로운 도시 공간은 상업을 발달시켰고, 상업의 발달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토대가 된 것이다. 영조와 정조 시대 때 조선은 농업 중심의 경제에서 누구나가 상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국가 운영 체계가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공간의 미래] 유현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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