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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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아의 선율
월아의 선율
질매재 거쳐 장군대봉 오르니. 뻥~ 하니 가슴 뚫리는 정겨운 산하. 드넓은 조망은 유순하고 넉넉하다. 진주 시내와 사천만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동에서 남으로 성곽처럼 둘러싼 겹겹의 능선들이 굽이쳐 흐르니, 수천 년 역사의 숨결 아니든가!
동쪽 하늘에 달이 차오를 때 질매재가 달을 토해내는 듯하여 월아산(月牙山)1이라 하였으니. 그 정기를 품은 산맥에 발을 놓아 보자.
배낭 옆구리 물 한 모금 하고선 마루금 능선을 걷는다. 선선한 꽃바람에 가을이 묻어오는데. 무릇~칡꽃~마타리~오이풀~ 그리고 누리장나무꽃! 칡꽃 향기는 허기진 고향의 향수를 부르고, 마타리 노오란 꽃에선 상큼한 레몬 향을 느껴본다. 오이풀 짙붉은 탱탱볼 열매는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고, 이파리를 여읜 무릇꽃에는 딱정벌레 한 마리 껌딱지가 되었다. 누리장나무 하얀 꽃이 지고 나면 붉은 바탕에 보랏빛 영롱한 브로치가 열릴 터다.
땅거미 질 무렵 장군대봉 정자로 돌아와 꼬마모듬김밥으로 저녁을 먹는다. 다양한 식재료의 맛이 새롭고 신선하다.
어느새 도심의 불빛이 팝콘 튀긴 듯이 밝아온다. 아랫마을 촌로께서 어두컴컴해진 임도를 따라 운동하러 왔다. 인사를 나눈 김에 뜻밖에도… 예상치 못한 말씀을 듣는다. “저 많은 도시 인구 중에 나와 맞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적당히 맞추면서 살아야 하겠지.”
세상에나, 평생토록 관계가 낯설고 어색한 나의 속사정을 들킨 듯하다. 세상은 넓고 스승은 많구나!
촌로는 되돌아가고 나는 초저녁 도심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 앞쪽에선 고속도로의 거대한 소음이 뒤쪽에선 을씨년스런 숲 바람 소리가 고막을 두드린다. 다행히도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가 쓸쓸한 가슴을 다독여 주더니, 도심의 불빛은 더욱 밝아져 형광색 양탄자 같다.
밤새 기온이 떨어져 긴팔 겉옷을 입었지만, 싸늘하게 웅크리고 밤을 새웠다. 이제 슬슬 침낭이 필요한 시간이 오는구나.
새벽 다섯 시쯤 텐트를 걷고 밖으로 나왔다. 화려했던 도심의 불빛도 힘을 잃은 새벽녘, 까만 하늘 위 둥그런 달무리가 고요의 바다에 배를 띄웠다. 억겁의 시간 너머 은하로 향하는 우주선인 듯~
나는 은하의 하늘 아래 앉아서 나의 60년 시공간을 들여다본다. 아직도 갈아내지 못한 내 마음의 송곳, 인생이 참으로 뾰족하구나! 먼데 남쪽 하늘에서 이따금 번갯불이 번쩍인다.
뿌옇게 밝아오는 아침, 동으로 드러누운 능선들이 우리 강산의 풍정을 자아내는데. 올망졸망 겹겹의 선율들이 오음(五音)을 뽑아낼 것만 같아. 나는 일렁이는 선율 위에 이 아침의 서기를 살포시 얹어 놓는다.
질매재 너머로 손톱 같은 초승달을 토해내는 월아의 선율이여!
⎯야생의 여행자⎯
*1 월아산
경남 진주시 금산면과 진성면 사이에는 월아산(해발 482m)이 있다. 나지막한 변방의 산이지만 자연 지형과 역사의 숨결 등 숨은 가치는 예사롭지 않다. 북으로 국사봉과 남으로 장군대봉을 끼고 잘록한 고개에 질매재가 있다.
월아산 자락에는 천년 고찰 청곡사와 아름다운 자연 저수지 금호지가 있다. 금호지와 청곡사에서 각각 주 능선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질매재 동쪽 골짜기에는 ‘월아산 숲속의 진주’(자연휴양림, 우드랜드, 유아숲체험원, 치유의숲 등)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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