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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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텃밭
사유의 텃밭
왜가리는 나뭇가지를 그리고 너구리는 꽃송이를 찍는다. 강가 모래밭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었으니. 말랑말랑 다 받아줄 수 있기 때문일 거야. 나도 흔한 발자국을 남겨두었지. 강언덕에 신발을 벗어두고 오래도록 걸었으니까.
여기는 하동 섬진강 평사리 공원. 새벽 강의 차거움이 가을날의 정수리를 타고 흐른다.
드넓은 모래 언덕을 걸어 나간다. 생명을 다한 재첩 껍데기 두 눈이 하얗게 드러누웠다. 섬진강 재첩은 얼마나 많은 희망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 왔을까? 대를 이은 인류의 목구멍을 위하여. 그리하여 선사유적이 된 강가의 조개무지들. 수행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며 식전 기도하는 것은, 나의 육신으로 가져오는 또 다른 생명의 희생을 책임지려는 다짐이라 했으니.
나는 평사리 모래밭을 걷는 동안 선인장이 살아가는 열사의 땅을 떠올린다. 나팔꽃, 강아지풀, 바랭이, 달뿌리풀. 모래알로 서걱거리며 불타오르는 한여름 땡볕에 뿌리를 내리다니! 인생의 굴레처럼 어쩌다 보니 자리 잡은 터전, 굶주려 등짝이 붙어도 포기하는 법이란 없다. 쉽게 흉내 낼 수는 열사의 잡초들! 그 삶이 뜨겁다.
강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걷다가, 모래 언덕에 발을 묻고 가만히 앉았다. 촉촉한 습기가 부드럽게 발을 감싼다. 그래서 저 생명들이 살 아가나 보다.
귓바퀴를 스치는 나긋한 바람 소리, 느릿느릿 누워서 흘러가는 강물, 짝을 맞추어 창공에 날갯짓하는 물새들, 켜켜이 몸뚱어리를 부대끼는 모래알의 숨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인가?
모래알은 하나하나 고유한 자신이다. 원래 태생이 험한 산기슭의 바위였거든. 그만큼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쎈 거야.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거친 모래알로 서걱거리는 이유다. 하지만 화합하는 기막힌 방법을 찾았으니. 시멘트와 섞으면 서로서로 어깨를 붙잡고 단단한 콘크리트가 된다. 홍수도 함부로 위협할 수 없는 거대한 조직. 아! 글쎄 모래는 험산의 바위였지.
언제부턴가 섬진강 모래 언덕은 사유의 텃밭이 되었으니. 불가사의, 무량대수로 쌓인 모래 언덕에서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다소곳이 몰려있는 돌멩이들이 타클라마칸 사막 한 점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아시스 마을 같다. 저 돌멩이 하나하나 속에 강인한 생명들이 숨 쉬고 있을지니!
⎯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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