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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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평원
대자연의 평원
모처럼의 파란 하늘 아래 살랑살랑~ 억새가 고개를 흔든다. 은빛 물결이 초록의 계절을 달려 전국에서도 이름난 억새평원, 산청 황매산에 올랐다. 일행 한 무리가 기념 촬영을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와 아~ 좋구나!” 내 마음도 그렇다.
눈길을 빼앗는 산정의 억새밭을 한바탕 거닐다가, 운명처럼 맞이하는 내 마음의 풀꽃들-쑥부쟁이, 미역취, 구절초, 오이풀, 수리취 등등.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정서, 산정의 가을꽃은 마주하는 대상을 순화하는 또렷한 힘을 지녔다. 하늘 높은 곳에서 모진 세파를 온몸으로 승화했기 때문일 거야.
햇살 돋는 언저리마다 하하 호호 웃고 있는 쑥부쟁이꽃은 어쩜 이리 해맑을 수 있을까? 거친 야생의 삶에도 구김살이 없어. 노오란 미역취 꽃방망이엔 베짱이 한 마리 포시라운 가을날의 여정을 즐기고 있구나!
산철쭉 숲그늘 아래 반쯤 뜯긴 구절초 한 송이 속이 썩을 대로 썩었다. 누구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 거고, 누구는 거참 볼품없다 지나칠 것이니. 서로의 입장은 차이가 무척이나 크겠지?
사랑스런 초원의 풀꽃을 즐기는 사이 해님이 먹구름 속으로 숨었다. 그로부터 굽이굽이 파도치는 산 그림자-황금의 빛 내림이 시작되었다. 태초를 밝힌 그 빛은 언제나 신비롭고 장엄하였으니, 여기 무언의 설교 앞에 무한한 고개를 숙인다.
은빛 물결 위로 어둑어둑 어둠이 몰려오는 시간, 하얀 구절초 꽃방석 위에서 잠을 청하는 풀벌레 한 마리를 본다. 저 자세로 밤새 대자연을 노래하다가 신새벽을 맞이 하나 보다. “마! 이것이 야생의 삶이다.” 일침에 쏘인다.
산정에서 내려와 소나무와 떡갈나무 사이에 텐트를 쳤다. 오늘 밤은 잠자리가 무척이나 친근할 것 같다. 고요한 산속에 황매봉이 오똑하니 내려다보는데, 산여울 물소리에 풀벌레 소리 더하니 가을밤의 별천지가 따로 없다.
컴컴한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며 ‘산청맥주’ 캔을 땄다.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어.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왔더니 바람이 일렁이며 밤공기가 차가워, 침낭 속으로 들어가 랜턴을 밝히고 하루의 스케치를 남긴다.
새벽녘에 오줌이 마려워 텐트를 열고 나왔더니 바람이 자러 가고 고요가 찾아왔다. 불빛은 사라지고 풀벌레만이 고요를 일깨우는 신새벽의 정기. 하루 중에서도 참 완벽한 시간이다.
컴컴한 임도를 따라 산정에 올랐다. 흐린 하늘이 뿌옇게 밝아온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침이슬처럼 바지런한 등산객이 많다. 동쪽 하늘이 퍽퍽하더니 한순간 북녘 산자락에서 운무가 피어오른다. 삽시간에 우뚝한 황매봉을 뒤덮고 흐르는데. 나는 여기 대자연의 평원, 억새밭에 섰다.
내려오는 길, 쑥부쟁이들이 아침이슬에 환하게 얼굴을 씻었다. 그러고 보니 황매산정의 운무에 나도 개운한 세수를 했구나!
⎯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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