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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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뛰어오르니
달빛에 뛰어오르니
섬 속의 섬 월등도(月登島). 조류에 따라 하루 딱 두 번만 드나들 수 있는 곳! 거북등을 타야만 깊은 바닷속에 들 수 있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곳! 이 전설 아닌 전설의 섬에 들기로 했다.
알뜰하게 저녁을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물 빠진 바닷길에 저녁 왜가리와 백로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낯선 인사를 한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사천 서포리 외딴 섬마을, 고갯마루에 넉살 좋은 강아지 한 마리 꼬리를 흔들며 마중 나온다. 저 집 주인도 살갑고 다정하겠지?
8월 말의 눈썹달은 점점 짙어지고, 코앞 거북섬 바닷물 등성이는 점점 얇아지고 있다. 서둘러 그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수많은 조개껍데기가 바스라져 생겨난 흙이 발아래 사각거린다.
섬의 정수리엔 컴컴한 솔가지들이 뻣뻣한 수염처럼 드러나고 그 위로 초저녁 별들이 반짝인다. 나는 텐트로 돌아와 서성이며 야경을 바라본다. 거북섬을 잇는 등성이가 조금씩 얇아지더니 어느새 출렁이는 물살이 발아래까지 닿는다.
나는 별빛 아래 까맣게 엎드린 거북등에 눈길이 머문다. 거북과 토끼 이야기로 펼쳐지는 구토설화(龜兎說話)는 고대 인도 불교 설화에서 왔다. 우리나라엔 삼국시대에 불교를 따라 들어왔다.
오래도록 구전되어 오가다 조선 후기 들어 새로운 장르로 변신을 이루었으니. 그 속엔 민간 의식의 성장에 따른 시대 비판과 해학이 담겼다.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을 풍자하고, 저항하는 사회 비판적 문화예술로 승화해 낸 것이지. 판소리 수궁가로, 토끼전과 별주부전 같은 고전소설로 말이다.
어제의 관념 너머로 달맞이꽃이 피나니. 어떤 이야기는 세계를 건너뛰어 법고창신(法古創新) 하는구나!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란 때론 비빔밥 같고 때론 청국장 같다.
동쪽 하늘이 밝아 토끼섬을 따라 아침 산책로를 걷는다. 물 빠진 해안가에 빨간 집게발이 인상적인 도둑게들이 서둘러 숨는다. 텐트를 걷고 나니 향긋한 꽃향기가 코끝에 닿는다. 간밤을 함께 지새워 더욱 친근한 칡꽃이로구나!
해안가 바위 벼랑에는 팥배나무 열매, 수풀엔 하얀 으아리꽃이 무더기. 길가에 이슬 머금은 강아지풀도 보슬보슬 넉살 좋아 보인다.
거북의 꾐에 빠져 용왕의 제물이 될 뻔한 토끼,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 달빛에 뛰어오르니. 한순간의 탐욕과 자만을 경계하고 지혜에 이르는 이야기가 수행자의 핏줄에 녹아있구나! 월등도 거북섬은 지금도 지척에서 토끼섬을 느릿느릿 바라본다.
⎯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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