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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상림의 딱따구리 관찰기
작성자 : 관리자(admin)   0         2021-07-18 04:34:59     236

 

함양상림의 딱따구리 관찰기

 

들어가기

겨울은 상림의 숲에서 딱다구리를 관찰하기 좋은 계절이다. 딱다구리는 주로 혼자서 활동한다. 여름철에는 무성하게 활동하는 벌레를 잡아먹지만, 겨울에는 먹이 구하기가 힘들어 주로 나무를 쪼아서 먹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딱따구리는 나무 틈속에 잠자고 있는 애벌레를 잘도 꺼내 먹는다. 그래서 겨울 숲에서는 딱따구리 소리를 더 자주 들을 수 있다. 그 식사음 덕분에 딱다구리는 금방 우리 눈에 들어온다.

함양상림에서 발견한 딱따구리 종류는 큰오색딱다구리(Dendrocopos leucotos), 오색딱다구리(Dendrocopos major), 청딱다구리(Picus canus), 쇠딱다구리(Dendrocopos kizuki)이다. 6년 동안 딱따구리 종류를 관찰·기록한 것에다가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 정리해 보았다.

딱다구리의 생활사에 관해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동영상과 조홍섭 환경전문기자의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다. 딱다구리는 2억 5000만 년 전부터 나무를 두드려왔다. 1초에 10~20번 나무를 찍는다. 속도는 시속 20km 정도라고 한다. 이때 뇌는 중력의 1,000배나 되는 충격 때문에 뒤로 밀리는데, 완충역할을 하는 두개골 뼈의 스펀지 구조와 막(설골)이 두개골을 감싸며 뇌를 보호한다. 눈알이 튀어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는 눈을 감는다. 20cm 넘는 길다란 혀는 끝이 낚시바늘처럼 되어있어 애벌레 같은 먹이를 쉽게 꺼낼 수 있다. 혀끝에는 신경이 밀집되어 있어 애벌레를 쉽게 구별한다.

딱다구리가 뇌손상을 입지 않는 것은 위아래 부리의 길이가 서로 다른 형태로 충격을 완화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딱다구리 뇌에 관한 의문은 아직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딱다구리 겨울 식량의 97%는 죽은 나무 속에 들어있는 애벌레라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무를 찍어야 할 운명이다. 어찌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딱다구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왔구나.”

 

 

큰오색딱다구리

큰오색딱따구리는 깃털 색이 화려해 딱따구리 집안의 귀족 같다. 상림에서는 유독 큰오색딱다구리가 눈에 많이 띈다. 개체 수가 많든, 생김새나 생활 습성이 도드라지든,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큰오색딱다구리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한참을 지켜보고 있어도 먹이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다. 늘상 사람들이 오가는 상림의 생활환경에 적응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큰오색딱다구리 수컷 (2019. 12. 24)
▶큰오색딱다구리 암컷 (2020. 12. 15)

 

2017년 11월 25일 가까운 곳에서 딱다구리 소리가 들린다. 나목이 되어가는 초겨울의 숲에서 딱다구리 소리가 자주 들린다. 2018년 12월 11일 뿌옇던 하늘에 눈이 내린다. 딱다구리 나무 찍는 소리가 들린다. 싸락눈이 빗방울이 되었다가 그쳤다.

2017년 12월 7일 큰오색딱다구리 한 마리가 개서어나무 죽은 가지에 동그란 구멍을 깊게 파고 있다. 먹이를 찾는 일은 아닌 것 같다. 2019년 3월 2일 큰오색딱다구리가 삑삑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서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가 숲 사이로 날아간다. 그 모습이 아래 위로 리드미컬 하게 파도치는 것 같다. 2020년 3월 20일 중앙숲길가에 고목 느티나무에서 굵은 껍질이 툭툭 떨어져 내린다. 올려다보니 큰오색이 한 마리가 있다. 껍질을 떼어내고 그 안에서 벌레를 찾는 것 같다. 나무 찍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2020년 4월 12일 숲이 초록 물감을 많이 입었다. 일주일 뒤에는 신록이 절정이 되겠다. 오후엔 비가 내린다. 요즘 숲에서 딱다구리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2020년 4월 23일 큰오색딱다구리 한 마리를 본다. 애벌레를 물고 있는 것을 보니 새끼를 키우고 있나 보다. 요즘 확실히 나무 찍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마도 곤충이 나오기 시작하니 애써 나무를 찍지 않아도 먹이를 구할 수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2019년부터 2020년 겨울 사이 상림우물 곁에 있는 거대한 졸참나무를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나무는 생명을 다해 딱따구리를 비롯한 새들의 만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상림의 핫 플레이스이다. 하지만 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에 집중한다. “그만큼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이겠지!” 이 시기 숲에 나갈 때마다 큰오색이를 본다. 거대한 졸참나무 가지마다 딱다구리가 파 놓은 속살의 흔적이 허옇게 드러나 있다. 얼마나 많이 두들겼으면 바닥에 나무 부스러기가 가득가득 떨어져 쌓일 정도이다. 그 주인공은 큰오색딱다구리다.

2019년 12월 15일 졸참나무 죽은 가지를 큰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세차게 두드린다. 얼마나 오래 두드렸는지 바닥에 나무 부스러기가 가득하다. 12월 20일 포근한 오후 상림우물에 먹을 물을 뜨러 나갔다. 큰오색이 한 마리가 바로 곁에 있는 졸참나무의 낮은 둥치를 찍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카메라를 차에 두고 온 탓에 2미터 정도 거리에서 동영상을 촬영했다. “겁나게 기특하고 고마운 놈!”
지켜보고 있으니 죽은 나무를 계속 쪼면서 틈틈이 뭔가 주워 먹는다. 10번~20번 나무를 찍으면 뭔가 콕 집어서 삼키는 동작을 반복한다. 눈으로 잘 보이진 않지만, 썩은 나뭇가지에 먹이가 그렇게 많은가 보다.


상림우물 곁 거대한 졸참나무를 찍고 있는 큰오색딱다구리 수컷 (2019. 12. 24)

 

12월 24일 커다란 수컷이 집중해서 나무를 찍고 있다. 지난번 그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좋은 사진을 건졌다. 위쪽 높은 가지에 한 마리가 더 보인다. 이 녀석도 먹이에 열중이다. 곁에 동고비 두 마리도 보인다. 바로 아래에는 산책객들이 무시로 지나다닌다. 바로 곁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에 좀 작은 수컷 큰오색이가 찾아왔다.

그 가지엔 쇠딱따구리도 보인다.  나무를 찍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지를 타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무언가 쪼아 먹는다. 동고비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먹이는 개미나 진딧물 같은 작은 곤충들이 아닌가 싶다. 박새도 직박구리도 슬쩍 와서는 뭔가 궁금한 듯 가지에 앉아보고는 휙~ 날아간다. 한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새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2020년 1월 1일 졸참나무의 하얀 부스러기들이 바닥에 촘촘히 쌓일 정도가 되었다. 커다란 가지 곳곳에는 허연 속살이 드러나 있다. 2월 10일 졸참나무의 가지를 기계톱으로 잘라냈다. 큰오색이들이 그동안 식사를 하던 굵은 가지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숲길 바로 위라 안전관리 차원에서 그런 것 같다. 나무를 자르기 전에 이 거대한 졸참나무를 사진으로 남겨둔 것이 다행이다.

가끔 상림 숲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아주 빠르게 두드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이는 애벌레를 먹기 위하여 나무를 찍는 소리와는 다르다. 맑고 높은음으로 굉장히 빠르게 울려 퍼지는 소리다. 북 치는 소리, 드럼 치는 소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라고도 한다. 어떤 녀석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2018년 5월 29일 숲에서 닥다르르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니 저쪽에서도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두드리기 경쟁을 하는 것 같다. 2020년 1월 18일 화수정 근처 졸참나무에서 그 소리의 주인공을 처음으로 마주쳤다. 큰오색딱다구리였다.

2020년 2월 7일 큰오색이 한 마리가 꾸준히 나무를 찍고 있다. 중앙숲길 걸어올 때 두어 번 북 치듯 다라라라라~ 소리 내던 그 녀석인지 모르겠다. 숲에는 큰오색이 여러 마리가 있다. 이때 큰오색이 한 마리가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두드린다. 썩은 나무를 두드리는 것보다 소리가 훨씬 맑고 크게 들린다. 드디어 북 치는 소리의 주인공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집에 와서 도감을 찾아보니 수컷이 존재의 영역(세력권)을 알리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번식기에는 암컷을 유인하는 행동이라고도 한다. 딱따구리가 간격을 두고 북 치는 소리를 내면서 두드리기 경쟁을 하는 이유를 짐작하겠다. 다른 새한테서는 볼 수 없는 참 특이한 행동이다. “맑은 소리를 크고 빠르게 낼수록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둥지에서 고개를 내미는 큰오색딱다구리 수컷 (2021. 5. 16)
▶딱정벌레 애벌레를 물고 있는 큰오색딱다구리 어미새 (2020. 4. 23)

 

2021년 5월 8일 오후 4시 30분 넘어서 동고비 둥지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큰오색딱다구리 둥지를 발견했다. 새끼를 키우고 있다. 어미 새가 연신 벌레를 물어올 때마다 둥지 안에서 짹짹거린다. 주변에는 청딱따구리를 비롯해 새소리가 많이 들린다. 6시 5분쯤 다시 둥지에 들러 보았다. 아무 기척이 없다. 10분쯤 앉아있으니 어미 새가 둥지에 날아왔다. 순간 새끼들이 짹짹거린다.

5월 9일 영상을 찍어볼까 하고 둥지에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어미가 와서 먹이를 주고 간다. 5월 10일에도 먹이 주는 것을 잠깐 지켜보았다. 5월 14일 드디어 새끼가 둥지 속에서 계속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미가 잠깐 왔다가 깍깍~ 하더니 인기척에 바로 날아가 버린다. 새끼는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계속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곧 이소를 할 모양이다.

5월 16일 오전 10시쯤 큰오색이 둥지를 찾았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숲은 온통 비에 젖었다. 숲에서는 휘파람새, 청딱따구리, 물까치 등 많은 새소리가 들린다. 둥지는 그루터기의 아래로 구멍이 뚫려있어 비가 들이칠 염려는 없겠다. 둥지 안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아직 둥지를 떠나지 않았구나.” 둥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니 새끼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어서 확인해보니 지난번처럼 수컷이다. 계속 고개를 내밀고 삑삑거리는 게 좀 이상하다. “배고파서 엄마를 찾는 걸까?” “무슨 이유일까?” 30여 분을 지켜보고 있어도 어미는 오지 않고 새끼는 좀 쉬었다가 계속 삑삑거린다. 둥지에는 이 녀석만 남아있는 것 같다. 다른 새끼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5월 19일 오전 8시 30분쯤 큰오색이 둥지에 왔다. 기다려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제 모두 둥지를 떠난 것 같다. 2021년 큰오색딱다구리가 둥지를 틀었던 굴참나무 아래서 바라보는 신록이 밝은 햇살 아래 싱그럽게 빛난다. 촉촉하고 상쾌한 아침이다.


2021년 5월 함양 척화비 근처 큰오색딱다구리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웠던 굴참나무 (2021. 5. 19)

 

 

청딱다구리

청딱다구리는 큰오색딱다구리보다 조금 큰 것 같다. 깃털이 온통 퇴색한 녹색을 하고 있는데도 청딱다구리라고 부른다. 새끼를 키울 때 먹이를 물어다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어미가 배부르게 먹은 뒤 돌아와서 토해 준다고 한다. 이점이 큰오색딱다구리나 쇠딱다구리와 다르다.

2019년 3월 6일 숲 가운데쯤에서 다르르르~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낄낄낄 우는 것으로 봐서 청딱다구리 같다. 3월 10일 비 내리는 점심 무렵 역사인물공원 북쪽에서도 청딱다구리 한 마리를 본다. 3월 12일에는 상림우물 위쪽 썩은 고목 그루터기에서 커다란 청딱다구리 한 마리를 본다. 부지런히 나무를 찍고 있다. 요즘 숲에 딱따구리 소리가 많이 들린다.

2020년 5월 23일 바로 눈앞의 나무에 청딱다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큰놈이다. 높고 굵게 깍~ 깍~ 깍~ 소리를 낸다. 덩치만큼이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2021년 6월 14일 상림운동장 서쪽 숲에서 청딱따구리 두 마리를 본다. 조용히 나무둥치를 타면서 서로 토닥인다. 형제간인지 부모·자식 간인지 모르겠다.

2016~2018년 새 관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는 상림에 청딱다구리는 거의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상림의 숲에 청딱다구리는 여러 가족이 둥지를 틀고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조용히 움직이는 편이라 숲에서 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2019년 12월 15일 상림 북쪽에서 나무 찍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를 따라 찾아보니 청딱다구리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녀석이다. 이 녀석은 큰오색딱다구리와 달리 경계심이 큰 것 같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더니 좀 더 먼 곳으로 훌쩍 날아 가버린다. 그 곁에 한 마리가 더 있는데 몸을 숨기기 바쁘다. 청딱다구리는 큰오색딱다구리처럼 드러내놓고 화끈하게 나무를 두들기는 것 같지도 않다.

2020년 2월 21일 역사인물공원 위쪽 숲 바닥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사랑놀음을 하는 듯한 청딱다구리 한 쌍을 본다. 한눈에도 상당히 크다. 쳐다보고 있으니 깜짝 놀라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다. “불륜도 아닐 텐데? ㅎ~” 가까이에 앉아있는 한 마리를 계속 따라가서 사진에 담아 보니 수컷이다.

같은 날 이은리석불 근처에서도 낄낄낄 하는 큰소리가 쉬어가면서 들린다. 근처를 맴돌며 계속 찾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 찾아보니 썩은 나무둥치에 청딱다구리가 앉아있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서 계속 울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제대로 증명사진을 찍었다. 한 30여 분 쉬어가면서 계속 낄낄거리더니 함화루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다볕당 뒤쪽 커다란 구멍이 있는 갈참나무 고목에서 청딱다구리 한 마리가 북 치는 소리를 낸다. 오늘은 청딱다구리 하고 인연이 깊은 날인가 보다. 장소를 옮겨가며 세 번이나 보게 되었으니.

2021년 6월 17일 습기가 많고 잔뜩 흐린 날이다. 아직 장마는 오지도 않았다. 오후 2시 40분쯤 역사인물공원 안쪽 숲에서 암수 한 쌍의 청딱따구리를 발견했다. 수컷은 둔덕에 심어놓은 상수리나무 둥치에 붙어 한참 동안 뭔가를 쪼아먹는다. 암컷은 숲에서 날아와 바로 곁에 있는 아카시나무 뒤에 몸을 숨긴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 불안했던지 곧 숲으로 날아가 버린다. 상수리나무 둥치를 살펴보니 나무를 타고 오르는 작은 개미를 먹은 거 같다.

집에 와서 청딱다구리 사진을 확대해 들여다보니 털이 여리고 곱다. 올해에 태어난 새끼들인 것 같기도 하다. 상림의 숲에서 다양한 어린 생명이 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무척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까시나무에 앉아 있는 청딱다구리 암컷 (2021. 6. 17)
○상수리나무를 타고 오르며 벌레를 쪼아 먹는 청딱다구리 수컷 (2021. 6. 17)
▶썩은 나무둥치에 앉아있는 청딱다구리 (2020. 2. 21)

 

 

오색딱다구리

2020년 5월 23일 상림운동장 남쪽 척화비 근처에서 딱따구리가 살고 있는 둥지를 발견했다. 길가 큰 팽나무 안쪽 가늘고 힘없어 보이는 졸참나무 고목에 난 구멍이다. 그 안에서 삑삑거리는 짧고 높은 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어미가 날아와 구멍에 앉는다. 하지만 불안을 느끼고 곧 옆 가지로 옮겨 앉더니 계속 울어댄다. 한참 동안 경계의 목소리를 놓지 못한다. 근처 의자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미 새가 또 먹이를 구해 구멍에 날아오니 새끼들의 목소리가 아우성을 친다. 짧은 간격으로 두 번 더 먹이를 물고 왔다. 머리를 구멍 안으로 넣고 부리를 톡톡 치면서 먹이를 건네주는 것 같다. 그리곤 금방 숲으로 사라진다.

5월 24일 2시 30분쯤 어제 발견한 딱따구리 둥지에 가보았다. 딱다구리는 보이지 않고 비가 내린다. 5월 25일 7시쯤 해는 이미 떨어졌다. 망원렌즈로 갈아서 딱다구리 둥지에 서둘러 가보았다. 어미 새가 구멍 뒤쪽에 앉아있다 나를 발견하고는 근처 가지로 날아가 다급한 경계의 울음소리를 낸다. 어둡지만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니 오색딱다구리다. 근처 나무 의자에 앉아 지켜보았다. 다른 데로 날아갔다가 다시 구멍 앞에 날아와 고개를 들이밀더니 곧장 날아가 버린다. 잠시 뒤 어미가 다시 오자 잠잠하던 구멍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끼가 구멍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다.

5월 30일 오색딱다구리 둥지에 다시 가보았다. 조류 사진작가 한 분이 카메라를 고정하고 기다리고 있다. 이곳 사람한테 제보를 받았단다. 함께 50여 분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소한 것 같다. 6월 1일 다시 와서 보아도 둥지는 조용하다.


◀오색딱다구리 둥지 (2020. 5. 25) ▶동고비 둥지 (2021. 4. 23)

 

2021년 4월 23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년 오색이 둥지에 가보았다. 뭔가 둥지 입구가 좁게 막혀 있다. 순간 “혹시 동고비가 들어와서 살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월 26일에는 이 구멍에서 작은 새가 고개를 내밀더니 포로록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어떤 새인지 확인을 못 했으니 궁금할 뿐. 5월 2일 다시 둥지에 가보고서야 어미 새가 동고비인 것을 확인했다. 작년에 오색딱다구리가 살았던 둥지를 알맞게 수리하여 보금자리로 삼은 것이다. 지켜보고 있으니 벌레를 물고 와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매우 경계를 한다. 좀 있다가 슬슬 다가오더니 구멍 속으로 고개를 박고 나오는데 부리에 벌레가 없다. 새끼에게 먹이를 준 것이다. 5월 3일 둥지를 지켜보고 있으니 어미가 날아와서는 구멍으로 쏙 들어간다. 동고비 새끼는 아직 이소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5월 5일에는 고프로를 챙겨 나가서 동고비가 둥지를 드나드는 것을 촬영했다. 5월 8일 저녁 6시쯤 동고비 둥지를 찾으니 아무런 기척이 없다.

 

 

쇠딱다구리

쇠딱다구리는 닥다르르르르~ 낮고 조그만 소리를 낸다. 멀리서는 잘 들리지도 않아 가까이 가야만 알 수 있다. 작은 몸집으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나무를 두드린다. 수컷은 정수리에 붉은 반점이 있는데 너무 작아서 보기 어렵다고 한다. 쇠딱다구리는 워낙 작고 조용히 지내는 터라 숲이 우거지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진첩을 뒤져 날짜를 살펴보니 주로 잎이 나오기 전 겨울에 찍은 사진이다.

산삼주제관 주차장에서 들어가는 숲의 입구에는 심어놓은 개오동나무 한 그루가 있다. 2019년 2월 17일 봄이 그리울 무렵 조그만 딱다구리 한 마리가 이 작은 가지를 부지런히 두드린다. 살아있는 가지다. 가까이 가도 가지를 바꾸어 숨을 뿐 날아가지 않는다. 집에 와서 도감을 찾아보니 쇠딱다구리다.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개미나 작은 곤충 같은 먹이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거대한 졸참나무를 타고 있는 쇠딱다구리 (2019. 3. 2)
○사마귀 알집을 파먹고 있는 쇠딱다구리 (2020. 3. 13)
▶소태나무를 타고 있는 쇠딱다구리 (2021. 5. 23)

 

2019년 3월 2일 오후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남쪽 화장실 근처 죽은 졸참나무의 거대한 몸통을 부지런히 쪼고 있다. 바로 산책로 곁이라 사람들이 막 지나다니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무언가 먹을 것이 있나 보다.

2020년 3월 13일 오후 4시쯤 상림운동장 들어가는 피노키오 조형물 근처 작은 느티나무에서 쇠딱다구리 한 마리를 본다.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날아가지 않고 이 녀석 역시 먹이에 집중하고 있다. 덕분에 가깝게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나중에 살펴보니 사마귀의 알집을 파먹는 중이었다. “먹을 것이 귀한 춘궁기에 고단백의 맛있는 먹이를 찾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나가기

6년 동안 월별 관찰일지를 정리해 보니 상림의 숲에 큰오색딱따구리는 거의 12달 모두 나타난다. 큰오색딱다구리는 1년 내내 상림에 살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겠다. 그뿐 아니라 청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쇠딱다구리도 상림에서 텃새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딱따구리는 생존을 위한 고독한 나무 찍기가 주특기다. 딱따구리들이 무리지어 먹이경쟁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주로 혼자서 열심히 나무를 쪼아 식사를 해결하는 편이다. 딱따구리가 식사를 하고 나면 나무 부스러기들이 수북하게 떨어져 나온다. 딱따구리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 되는 이 현상은 죽은 나무들을 부식시켜 자연으로 되돌리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구멍이 숭숭 뚫린 죽은 나무 둥치는 작은 곤충들의 먹이와 생활공간이 되어준다.


딱따구리가 식사를 하고 난 뒤 떨어져 나온 나무 부스러기들

 

상림의 숲은 1년이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아름드리 고목들이 생을 마감한다. 주로 개서어나무 아니면 참나무류이다. 덕분에 딱다구리의 밥상은 넉넉해진다. 하지만 숲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이기도 해 멀리 보면 딱따구리에게 아주 심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큰오색딱따구리가 나무줄기를 두들기는 소리는 둔탁하고 굵직하다. 덩치가 큰 청딱다구리 소리도 그리 많이 들어보지 않아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비슷하거나 좀 더 괴팍할 것 같다. 그러나 쇠딱다구리 소리는 가늘고 부드럽다. 상림 숲에서 각기 다른 딱따구리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다.

딱따구리는 둥지로 쓸 구멍을 파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상황이 변하면 구멍 파기 작업을 중단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다볕당 뒤 거대한 갈참나무 높은 둥치에는 얕고 작은 구멍이 하나 있다. 딱따구리가 파다가 만 구멍처럼 보인다. 상림의 숲에는 이런저런 구멍이 아주 많이 보인다. 숲에서 딱따구리들의 활동을 짐작해 볼 수 있는 흔적이다. 이 구멍들 중에는 딱다구리가 살면서 새끼를 키운 보금자리도 있을 것이다. 번식기가 되면 이 구멍들을 자주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딱다구리의 생활 속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딱다구리가 파놓은 구멍은 다른 새나 동물의 둥지가 되기도 한다. 숲에 딱따구리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이모저모 도움이 될  것이다.

 

작성자 ; 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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