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소나무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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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라는 문화코드
작성자 : 관리자(admin)   0         2021-05-01 08:47:45     94

 

한국인은 솔사람솔은 나무 한국인이다

소나무.

이렇게 한국인이 소리내는 것은 누군가 정다운 이를 부르거나벗을 부르는사랑하는 이를 부르는 그 음색그 음조가 실리게 마련이다.

솔아!” “소나무야!”

한국인은 이렇게 그 상록의 침엽수를그 바늘잎의 단청나무를 부르고 싶어한다그렇게 한국인은 솔과 함께솔과 이웃하여 한동아리한 피붙이로 살아왔다한국인은 솔사람이고 솔은 나무 한국인이다한국인의 정서적정신적 인구통계에 솔은 들어 있어야 한다한국인이 솔아!” 하고 부르면소슬한 바람솔바람의 여운이 실린다한국인이 소나무야!” 하고 소리치면 송진내음솔향이 풍긴다젊어서 한국인의 속살은 송기의 빛과 내음을 간직한다나이들면 소나무 껍질의 용비늘을 제 살갗으로 누리는 사람그게 한국인이다.

 

우리는 솔사람이다.

궁궐을 짓는 나무는 소나무 중에서도 황장목(黃腸木)이라고 했다속이 온통 호박빛이니 누런 속내라는 뜻으로 부른 소나무의 별명으로소나무 중의 소나무로 칭송받았다이를테면 최상의 귀골 소나무이다커다란 바위 비석에 금송(禁松)이라고 새겨서 세우면 대소 인원이 이 앞에 감히 얼씬거리지를 못하였다.

춘양목 또한 솔의 별호이니사찰의 대들보도 명가 대옥의 동량으로 그 높은 기품을 자랑했다곧아서 용솟음치듯실해서 하늘기둥이듯 해야 비로소 춘양목의 이름을 누렸으니 왜 아니 그럴라고소나무 중의 호걸이요 영웅이다.

가로되 낙락장송이라 이름한 소나무가 따로 있었으니솔 중의 선풍도골이다용으로 화함직한 소나무라서 그는 구태여 아슬한 바위벼랑 끝에 자리했다지조기개소쇄함으로그리고 무엇보다 고고함으로 그를 덮을 지상의 존재는 따로 없었으니그를 일러서 따로 고송’ 또는 독송일라 함직하지 않은가식물학적인 품종만 따진다면홍송흑송백송을 들어야 하고 또 곰솔반송이외에도 육송에 해송 그리고 강송이며 처진 솔 등을 더 들어야 한다.

솔의 가짓수가 이쯤해서 끝날 수는 없다눈 맞은 설송바람 설레는 풍송은 솔의 시정이자 악정으로 기림을 받았다산봉우리 안개 속에서 묵도하는 무송 그리고 비바람에 감연히 맞선 우송 또한 한국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리내리고 가지 뻗어 있었다어찌 이뿐이랴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솔은 곧 한송이니그림 그리는 화사화백들이 다투어 붓을 가다듬은 것은 독송 이하 이들 여러 가지 소나무에 깊이 귀의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이리하여 이 땅에는 소나무로 해서 송시송악 그리고 무엇보다 송화가 생겨나고 그로 해서 솔의 예술이 창생하였다.

솔에 바람 일면 송도라고 했으니바람소리 마치 한바다 큰 너울 일렁이듯 한다는 뜻작은 솔바람은 송풍 또는 송람이라고 해도 무방하나 굳이 송뢰하고 함은 그 소리 은은한 피리소리 닮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만 솔이 번창한 것은 아니다일상생활 속에서 솔은 온통 인구과잉일 지경이다 집을 솔로 짓고 땔감을 솔로 하고 등촉도 솔로 했으니 이를 옛시조들은 솔불이라고 따로 이름지었다지게에도 지팡이에도 작대기에도 물론 솔을 썼다그밖에 송연은 소나무에서 만든 먹이다.

솔잎가루를 생식하면 신선이 된다고 했고 솔잎 다려서 우려내면 솔차라고 했다구황할라치면 송깃살 벗겨서 떡을 빚었다제사에 쓸 떡을 찔때면 구태여 시루 바닥에 솔잎을 깔았다이밖에 먹거리로도 솔은 매우 풍요했으니 송자송죽송편송기떡송화다식송편 등이 이에 속한다물론 송이도 빼면 안된다.

솔의 쓰임새는 끝이 없으니몸은 가도 솔은 그 뿌리에 복령을 길러서 약제를 남기고 그 진으로 호박을 결정시켜 구슬을 남기니솔에는 생과 사가 그야말로 불이(不二).

제사를 앞둔 아낙네들 솔가지 불 붙여서 술독이며 떡시루 씻가셨으니 이는 솔의 청정으로 조상님들 신령 모시기 위함이다.

 

여전히 곧고 곧으니 솔은 솔이로다

솔은 이같이 한국인의 생활과 예술생각과 정서에 걸쳐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깊이 뿌리내리고 널리 퍼져 있다한국인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곧 솔밭이고 한국인의 정서가 곧 송림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크게 지나침은 없을 것 같다그 빛이 한국인 마음 바탕을 물들이고그 모양새가 한국인 사고의 뜰에 짙은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그리고 그 소리는 한국인 영혼 속에 메아리친다.

솔의 빛은 푸르름만이 아니다잎은 사시사철 푸르고그 기둥은 사시사철 붉다곧 솔의 빛은 단청 바로 그것이다.

단은 일편단심의 그 단어이다붉은 빛으로 형상화된 인간의 정성의리사랑이 곧 단이다그것은 열정이고 치성이다또한 단약이면 곧 선약이듯 이 단은 신선이나 도사를 연상시키기 족한 빛이다.

이간의 지극한 정성의 빛에 푸르름을 더하면 그게 곧 소나무의 단청이거니와 청은 맑음이고 싱그러움이고 항존할 생명이다청정과 청명을 두루 겸하는 빛그게 곧 솔의 청이다솔의 청은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그 잎에서 나오니그것은 늠렬이요 매서움이다비수의 날카로움에 견주어 볼 만한 푸르름그게 곧 솔의 청이다.

붉도록 정성스럽되푸르도록 소슬한 마음바탕사람됨을 간직하라고 한국인은 솔의 단청을 칭송해 왔다그 둘의 빛이 어울리면 극복초월승화는 이제 마음먹기 탓이다그래서 한국인은 솔을 보면서 그들 마음 빛 또한 단청이기를 바랐으니그림 그리는 이들이 단청의 색조에 매혹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솔의 모양새는 도대체 무엇일까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천의무봉함에 있다솔기 없는 선녀의 옷이듯이 메인 데 없고 걸림이 없다불어서 간 바람의 중첩된 기척까지를 솔은 그 모양새에다가 반영한다곧음을 즐기되 구태여 일직선이기를 고집하지 않는 그 자유로움은 솔의 천성이다도통한 활달그것을 솔은 모양 짓고 있다인색이나 옹고집은 솔의 몫이 아니다그런데도 여전히 곧고 곧으니 과연 솔은 솔이다.

솔이 굽고 휘고 한 모습우람하게 정정함에도 불구하고 휘고 굽은 모습을 좋아했다그것은 예사로는 당치도 않는 모순의 조화이기 때문이다정정이면 굽지 말거나휘면 돌올하지 말거나 해야지 그 역과 역을 서로 해조하다니, ‘직이 곡이고 곡이 직인 그 경지가 난을 친 소슬한 붓길을 유혹 아니 했다면 거짓말이다.

굴신의 자유기복의 무애는 인간적 성숙을 의미하는 운신의 폭이었으니솔이 있어서 이 땅의 선비들은 골라서 그 스승으로 삼았다부드러운 붓으로 굳건한 곧음을 바로 붓 끝으로 날렵한 바람 기운을 종이에 옮기되기왕이면 그 둘의 수의상종하고 임의호응을 솔은 본보기삼아서 형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솔의 모양새로 비대함보다는 야윈 쪽을 더 좋아했다어쩌면 큰 학의 다리 같은 것을 연상시킬 깡마름을 더 높이 쳤다고도 이를 만하다솔이 새가 된다면 학이거니와 그래서 솔의 매무새는 굳이 학신수구라고 하면 어떨까그래서 한 그루 솔이 우뚝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학립곧 학이 고고히 선 모습이며 학망곧 학이 멀리 바라보고 있는 모양을 연상한 것이리라.

야위고 수척한데도 솔은 꺾이는 기색이 없다되려 척박함을 이겨온 모진 풍상을 견뎌온 인고와 감내의 체형 그 자체다그래서 기개며 의지를 몸소 구현한 것이 솔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해 왔다군살이라곤 아예 몸에 붙이지 않는 솔그래서 솔은 한여름 복중에도 오히려 한송이다그것은 결백과 무욕나아가서 허정무위까지를 상정하고 있을 법하다이 솔의 심지를 화사며 화백들이 놓칠 턱이 없다전통 한국화가 자연과 사물의 사의를 노리고 있었다면 솔로 해서 비로소 깊어지고또 열리게 될 무욕 무위를 화선지에 옮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산수의 사의가물시에 버금할 물화의 사의가 필경 청정한 적에 형체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어찌 솔을 모른다고 했으리오화필은 어느 것이나 그 경지를 솔에 부쳐서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유한청적은 선비가 학문을 닦고 마음을 수련하고 행동을 다스린 그 궁극이 아니던가솔은 그같이 사의하던 한 사람의 선비화사를 위해서 스스로 알아서 포즈를 취해준 모델이었을지도 모른다학이 그렇고 난이 그렇고 또한 매화나 국화가 그랬듯이,,, 이들 넷은 솔의 혈친들동족들이다우리들 주변 자연에서 가장 고고한 영예를 지켜 온 명문에 속한 동아리들이다.

 

세상에 문득청정한 솔바람 소리 인다.

솔의 소리며 울림은 이미 송뢰로 해서 말한 바 있거나와 다들 그것에 귀 기울인 심혼이면 도인의 청적을선인의 옥적을 능히 헤아렸으리라솔바람 계곡을 건너가고 파도를 헤집는 소리는 그 소연함이 되려 소연함이었으니 기가 찰 일이다.

시끄러울 법화되 오히려 처연한도록 숙연해지니듣는이 누구나 옷깃 여미고 고쳐 앉을 것이다다들 고개 숙여 어제를 뒤집고 마음 다잡아서 먼 내일을 생각할 것이다만물의 기를 일으켜 세우되고요를 일깨우는 소리로 바람에 설레었다화사들에게 그것은 가히 정중동이요동중정이었으니꼿꼿한 정정에 심혼만이 응시할 동(움직임)을 담아서 그들은 그것을 솔그림이라고 했다.

돌이켜 솔의 자리 잡음은 어떠한가그 토폴로지그 토포그라피는 어떤 것일까다른 것은 몰라도 독송은 무리 짓지 않는다독야청청이요군계일학이다그래서 솔은 호랑이를 닮았다원숭이나 이리처럼 무리 짓는 것을패거리 짜는 것을 호랑이는 사뭇 업신여긴다능멸한다도당당파정당 그것은 생명 가진 것 중에서도 말자들이나 할 짓이라고 호랑이는 얕잡는다옛 민속화가 곧잘 독송 아래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서 포효하게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이러니 고송은 천길 낭떠러지 위에 자리 잡는다용상이니 옥좌니 하는 것도 떼거리 속이면 피라미 집이라고솔은 사뭇 의젓하다의자 뒷바지에 제 아무리 봉황을 수놓는다 해도 패거리 거느리기 위해서라면그게 참새 둥지와 까치집과 다를게 뭐냐고 솔은 안하무인이다그래서 솔은 흉하지 않는 교만성스럽기도 한 오만을 누릴 자질을 갖추었다그로써 깍아지른 절벽 위의 솔은 돌벼랑에 오직 한 포기 지친 난과 즐겨서 이웃하기를 바란다.

대원군의 난 그리고 추사 세한도의 솔이 다르지 않다난은 잎으로 된 솔이요솔은 등길이며 줄기 이룬 난이다문인화의 쌍벽이고 쌍옥이다온 우주 속에 오직 홀로 있는 듯한 독존의 독존 그 앞에 붓들고 무릎 꿇었다면 그 화사 또한 천상 천하 유아독존 하였으리라.

학의 모습을 말함에 등걸의 용비늘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옛 어른들께서 용린이라 하였으니솔은 나이가 들수록 풍상을 겪을수록 용린을 늘려간다올이 굵어지고 주름이 돋으니 천년 묵은 청룡의 상호는 온전히 솔의 몫이다이로써 그가 아스라이 벼랑에 서면그리하여 그 굴신의 자유를 과시하며 서리감으면 그야말로 솔은 용틀임하느니이제 승천은 멀지 않았다이때 솔은 땅위에 솟되이미 하늘 나는 용이다.

이제 임해서 화사의 운필이 바야흐로 정중동의 극치를 이룰지니겉보기로 가만히 제자리 지킴하는 솔로 하여금 우주로 내닫는 움직임이게 한 화사들의 필치여이제 이내 한 장의 백지가 우주로 화하리라.

이 모습 이 빛이 소리이 지리 때문에 솔은 두고두고 유불선의 삼위일체의 표상일 수 있었다불에서는 선을 도가에서는 무위허정을그리고 유에서는 성을 이끌어 드디어 하나로 어울리게 하니솔은 오랜 세월 우리의 이념이요 이데아였다그는 그런 추세로 우리의 마음밭에 심혼의 골짝에그리고 정서의 봉우리에 솟아 있었다독야청청우거져 있었다그리고 당연히 우리들의 그림밭에서도 유아독존푸르러 있었다.

옛 사람들 한데 나가서 오수를 누릴 때도 소나무 뿌리를 베었다그러나 송침에서 잠이 깨면 동자 불러서 한 잔 차를 다리니그야 소나무 아래로다그러던 중 학이 손님으로 찾아들면 송람 반주 삼아서 가야금 줄을 골랐으니 이웃 매화 향내 화답하더니라때맞추어 눈 내리면 송주 익었는가를 아이에게 물으리라.

이제 이 모습이 정경 아아로이 그리우니여기 한 폭 그림으로 서로를 달래자.

십오야 달이 밝으면 소나무 그림자를 스치듯 학이 날개를 편다온 세상 순식간에 빚은 청자가 되고 백자가 되나니그것은 김환기 화백의 화선의 화폭.

세상에 문득청정한 솔바람 소리 인다단청의 마음 어린다.

 

[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가지김열규 마루 1997. 6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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