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소나무 공간입니다.
소나무라는 문화코드
한국인은 솔사람, 솔은 나무 한국인이다
솔, 소나무.
이렇게 한국인이 소리내는 것은 누군가 정다운 이를 부르거나, 벗을 부르는, 사랑하는 이를 부르는 그 음색, 그 음조가 실리게 마련이다.
“솔아!” “소나무야!”
한국인은 이렇게 그 상록의 침엽수를, 그 바늘잎의 단청나무를 부르고 싶어한다. 그렇게 한국인은 솔과 함께, 솔과 이웃하여 한동아리, 한 피붙이로 살아왔다. 한국인은 솔사람이고 솔은 나무 한국인이다. 한국인의 정서적, 정신적 인구통계에 솔은 들어 있어야 한다. 한국인이 “솔아!” 하고 부르면, 소슬한 바람, 솔바람의 여운이 실린다. 한국인이 “소나무야!” 하고 소리치면 송진내음, 솔향이 풍긴다. 젊어서 한국인의 속살은 송기의 빛과 내음을 간직한다. 나이들면 소나무 껍질의 용비늘을 제 살갗으로 누리는 사람, 그게 한국인이다.
우리는 솔사람이다.
궁궐을 짓는 나무는 소나무 중에서도 황장목(黃腸木)이라고 했다. 속이 온통 호박빛이니 누런 속내라는 뜻으로 부른 소나무의 별명으로, 소나무 중의 소나무로 칭송받았다. 이를테면 최상의 귀골 소나무이다. 커다란 바위 비석에 금송(禁松)이라고 새겨서 세우면 대소 인원이 이 앞에 감히 얼씬거리지를 못하였다.
춘양목 또한 솔의 별호이니, 사찰의 대들보도 명가 대옥의 동량으로 그 높은 기품을 자랑했다. 곧아서 용솟음치듯, 실해서 하늘기둥이듯 해야 비로소 춘양목의 이름을 누렸으니 왜 아니 그럴라고! 소나무 중의 호걸이요 영웅이다.
가로되 ‘낙락장송’이라 이름한 소나무가 따로 있었으니, 솔 중의 선풍도골이다. 용으로 화함직한 소나무라서 그는 구태여 아슬한 바위벼랑 끝에 자리했다. 지조, 기개, 소쇄함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고고함으로 그를 덮을 지상의 존재는 따로 없었으니, 그를 일러서 따로 ‘고송’ 또는 독송일라 함직하지 않은가? 식물학적인 품종만 따진다면, 홍송, 흑송, 백송을 들어야 하고 또 곰솔, 반송이외에도 육송에 해송 그리고 강송이며 처진 솔 등을 더 들어야 한다.
솔의 가짓수가 이쯤해서 끝날 수는 없다. 눈 맞은 설송, 바람 설레는 풍송은 솔의 시정이자 악정으로 기림을 받았다. 산봉우리 안개 속에서 묵도하는 무송 그리고 비바람에 감연히 맞선 우송 또한 한국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리내리고 가지 뻗어 있었다. 어찌 이뿐이랴!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솔은 곧 한송이니, 그림 그리는 화사, 화백들이 다투어 붓을 가다듬은 것은 독송 이하 이들 여러 가지 소나무에 깊이 귀의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이 땅에는 소나무로 해서 송시, 송악 그리고 무엇보다 송화가 생겨나고 그로 해서 솔의 예술이 창생하였다.
솔에 바람 일면 송도라고 했으니, 바람소리 마치 한바다 큰 너울 일렁이듯 한다는 뜻, 작은 솔바람은 송풍 또는 송람이라고 해도 무방하나 굳이 송뢰하고 함은 그 소리 은은한 피리소리 닮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만 솔이 번창한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솔은 온통 인구과잉일 지경이다 집을 솔로 짓고 땔감을 솔로 하고 등촉도 솔로 했으니 이를 옛시조들은 ‘솔불’이라고 따로 이름지었다. 지게에도 지팡이에도 작대기에도 물론 솔을 썼다. 그밖에 송연은 소나무에서 만든 먹이다.
솔잎가루를 생식하면 신선이 된다고 했고 솔잎 다려서 우려내면 솔차라고 했다. 구황할라치면 송깃살 벗겨서 떡을 빚었다. 제사에 쓸 떡을 찔때면 구태여 시루 바닥에 솔잎을 깔았다. 이밖에 먹거리로도 솔은 매우 풍요했으니 송자, 송죽, 송편, 송기떡, 송화다식, 송편 등이 이에 속한다. 물론 송이도 빼면 안된다.
솔의 쓰임새는 끝이 없으니, 몸은 가도 솔은 그 뿌리에 복령을 길러서 약제를 남기고 그 진으로 호박을 결정시켜 구슬을 남기니, 솔에는 생과 사가 그야말로 불이(不二)다.
제사를 앞둔 아낙네들 솔가지 불 붙여서 술독이며 떡시루 씻가셨으니 이는 솔의 청정으로 조상님들 신령 모시기 위함이다.
여전히 곧고 곧으니 솔은 솔이로다
솔은 이같이 한국인의 생활과 예술, 생각과 정서에 걸쳐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깊이 뿌리내리고 널리 퍼져 있다. 한국인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곧 솔밭이고 한국인의 정서가 곧 송림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크게 지나침은 없을 것 같다. 그 빛이 한국인 마음 바탕을 물들이고, 그 모양새가 한국인 사고의 뜰에 짙은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한국인 영혼 속에 메아리친다.
솔의 빛은 푸르름만이 아니다. 잎은 사시사철 푸르고, 그 기둥은 사시사철 붉다. 곧 솔의 빛은 단청 바로 그것이다.
단은 일편단심의 그 단어이다. 붉은 빛으로 형상화된 인간의 정성, 의리, 사랑이 곧 단이다. 그것은 열정이고 치성이다. 또한 단약이면 곧 선약이듯 이 단은 신선이나 도사를 연상시키기 족한 빛이다.
이간의 지극한 정성의 빛에 푸르름을 더하면 그게 곧 소나무의 단청이거니와 청은 맑음이고 싱그러움이고 항존할 생명이다. 청정과 청명을 두루 겸하는 빛, 그게 곧 솔의 청이다. 솔의 청은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그 잎에서 나오니, 그것은 늠렬이요 매서움이다. 비수의 날카로움에 견주어 볼 만한 푸르름, 그게 곧 솔의 청이다.
붉도록 정성스럽되, 푸르도록 소슬한 마음바탕, 사람됨을 간직하라고 한국인은 솔의 단청을 칭송해 왔다. 그 둘의 빛이 어울리면 극복, 초월, 승화는 이제 마음먹기 탓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솔을 보면서 그들 마음 빛 또한 단청이기를 바랐으니, 그림 그리는 이들이 단청의 색조에 매혹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솔의 모양새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천의무봉함에 있다. 솔기 없는 선녀의 옷이듯이 메인 데 없고 걸림이 없다. 불어서 간 바람의 중첩된 기척까지를 솔은 그 모양새에다가 반영한다. 곧음을 즐기되 구태여 일직선이기를 고집하지 않는 그 자유로움은 솔의 천성이다. 도통한 활달, 그것을 솔은 모양 짓고 있다. 인색이나 옹고집은 솔의 몫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곧고 곧으니 과연 솔은 솔이다.
솔이 굽고 휘고 한 모습, 우람하게 정정함에도 불구하고 휘고 굽은 모습을 좋아했다. 그것은 예사로는 당치도 않는 모순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정정이면 굽지 말거나, 휘면 돌올하지 말거나 해야지 그 역과 역을 서로 해조하다니, ‘직이 곡’이고 ‘곡이 직’인 그 경지가 난을 친 소슬한 붓길을 유혹 아니 했다면 거짓말이다.
굴신의 자유, 기복의 무애는 인간적 성숙을 의미하는 운신의 폭이었으니, 솔이 있어서 이 땅의 선비들은 골라서 그 스승으로 삼았다. 부드러운 붓으로 굳건한 곧음을 바로 붓 끝으로 날렵한 바람 기운을 종이에 옮기되, 기왕이면 그 둘의 수의상종하고 임의호응을 솔은 본보기삼아서 형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솔의 모양새로 비대함보다는 야윈 쪽을 더 좋아했다. 어쩌면 큰 학의 다리 같은 것을 연상시킬 깡마름을 더 높이 쳤다고도 이를 만하다. 솔이 새가 된다면 학이거니와 그래서 솔의 매무새는 굳이 학신수구라고 하면 어떨까? 그래서 한 그루 솔이 우뚝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학립, 곧 학이 고고히 선 모습이며 학망, 곧 학이 멀리 바라보고 있는 모양을 연상한 것이리라.
야위고 수척한데도 솔은 꺾이는 기색이 없다. 되려 척박함을 이겨온 모진 풍상을 견뎌온 인고와 감내의 체형 그 자체다. 그래서 기개며 의지를 몸소 구현한 것이 솔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해 왔다. 군살이라곤 아예 몸에 붙이지 않는 솔, 그래서 솔은 한여름 복중에도 오히려 한송이다. 그것은 결백과 무욕, 나아가서 허정무위까지를 상정하고 있을 법하다. 이 솔의 심지를 화사며 화백들이 놓칠 턱이 없다. 전통 한국화가 자연과 사물의 사의를 노리고 있었다면 솔로 해서 비로소 깊어지고, 또 열리게 될 무욕 무위를 화선지에 옮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산수의 사의가, 물시에 버금할 물화의 사의가 필경 청정한 적에 형체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어찌 솔을 모른다고 했으리오! 화필은 어느 것이나 그 경지를 솔에 부쳐서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유한청적은 선비가 학문을 닦고 마음을 수련하고 행동을 다스린 그 궁극이 아니던가! 솔은 그같이 사의하던 한 사람의 선비화사를 위해서 스스로 알아서 포즈를 취해준 모델이었을지도 모른다. 학이 그렇고 난이 그렇고 또한 매화나 국화가 그랬듯이,,, 이들 넷은 솔의 혈친들, 동족들이다. 우리들 주변 자연에서 가장 고고한 영예를 지켜 온 명문에 속한 동아리들이다.
세상에 문득, 청정한 솔바람 소리 인다.
솔의 소리며 울림은 이미 송뢰로 해서 말한 바 있거나와 다들 그것에 귀 기울인 심혼이면 도인의 청적을, 선인의 옥적을 능히 헤아렸으리라. 솔바람 계곡을 건너가고 파도를 헤집는 소리는 그 소연함이 되려 소연함이었으니 기가 찰 일이다.
시끄러울 법화되 오히려 처연한도록 숙연해지니, 듣는이 누구나 옷깃 여미고 고쳐 앉을 것이다. 다들 고개 숙여 어제를 뒤집고 마음 다잡아서 먼 내일을 생각할 것이다. 만물의 기를 일으켜 세우되, 고요를 일깨우는 소리로 바람에 설레었다. 화사들에게 그것은 가히 정중동이요, 동중정이었으니, 꼿꼿한 정정에 심혼만이 응시할 동(움직임)을 담아서 그들은 그것을 솔그림이라고 했다.
돌이켜 솔의 자리 잡음은 어떠한가? 그 토폴로지, 그 토포그라피는 어떤 것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독송은 무리 짓지 않는다. 독야청청이요, 군계일학이다. 그래서 솔은 호랑이를 닮았다. 원숭이나 이리처럼 무리 짓는 것을, 패거리 짜는 것을 호랑이는 사뭇 업신여긴다. 능멸한다. 도당, 당파, 정당 그것은 생명 가진 것 중에서도 말자들이나 할 짓이라고 호랑이는 얕잡는다. 옛 민속화가 곧잘 독송 아래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서 포효하게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니 고송은 천길 낭떠러지 위에 자리 잡는다. 용상이니 옥좌니 하는 것도 떼거리 속이면 피라미 집이라고, 솔은 사뭇 의젓하다. 의자 뒷바지에 제 아무리 봉황을 수놓는다 해도 패거리 거느리기 위해서라면, 그게 참새 둥지와 까치집과 다를게 뭐냐고 솔은 안하무인이다. 그래서 솔은 흉하지 않는 교만, 성스럽기도 한 오만을 누릴 자질을 갖추었다. 그로써 깍아지른 절벽 위의 솔은 돌벼랑에 오직 한 포기 지친 난과 즐겨서 이웃하기를 바란다.
대원군의 난 그리고 추사 세한도의 솔이 다르지 않다. 난은 잎으로 된 솔이요, 솔은 등길이며 줄기 이룬 난이다. 문인화의 쌍벽이고 쌍옥이다. 온 우주 속에 오직 홀로 있는 듯한 독존의 독존 그 앞에 붓들고 무릎 꿇었다면 그 화사 또한 천상 천하 유아독존 하였으리라.
학의 모습을 말함에 등걸의 용비늘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옛 어른들께서 용린이라 하였으니, 솔은 나이가 들수록 풍상을 겪을수록 용린을 늘려간다. 올이 굵어지고 주름이 돋으니 천년 묵은 청룡의 상호는 온전히 솔의 몫이다. 이로써 그가 아스라이 벼랑에 서면, 그리하여 그 굴신의 자유를 과시하며 서리감으면 그야말로 솔은 용틀임하느니, 이제 승천은 멀지 않았다. 이때 솔은 땅위에 솟되, 이미 하늘 나는 용이다.
이제 임해서 화사의 운필이 바야흐로 정중동의 극치를 이룰지니, 겉보기로 가만히 제자리 지킴하는 솔로 하여금 우주로 내닫는 움직임이게 한 화사들의 필치여! 이제 이내 한 장의 백지가 우주로 화하리라.
이 모습 이 빛, 이 소리, 이 지리 때문에 솔은 두고두고 유불선의 삼위일체의 표상일 수 있었다. 불에서는 선을 도가에서는 무위허정을, 그리고 유에서는 성을 이끌어 드디어 하나로 어울리게 하니, 솔은 오랜 세월 우리의 이념이요 이데아였다. 그는 그런 추세로 우리의 마음밭에 심혼의 골짝에, 그리고 정서의 봉우리에 솟아 있었다. 독야청청, 우거져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들의 그림밭에서도 유아독존, 푸르러 있었다.
옛 사람들 한데 나가서 오수를 누릴 때도 소나무 뿌리를 베었다. 그러나 송침에서 잠이 깨면 동자 불러서 한 잔 차를 다리니, 그야 소나무 아래로다. 그러던 중 학이 손님으로 찾아들면 송람 반주 삼아서 가야금 줄을 골랐으니 이웃 매화 향내 화답하더니라. 때맞추어 눈 내리면 송주 익었는가를 아이에게 물으리라.
이제 이 모습, 이 정경 아아로이 그리우니, 여기 한 폭 그림으로 서로를 달래자.
십오야 달이 밝으면 소나무 그림자를 스치듯 학이 날개를 편다. 온 세상 순식간에 빚은 청자가 되고 백자가 되나니, 그것은 김환기 화백의 화선의 화폭.
세상에 문득, 청정한 솔바람 소리 인다. 단청의 마음 어린다.
[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가지] 김열규 마루 1997. 68-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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