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류2
바다에 산호가 있다면 육지에는 이끼가 있다.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흐른다. 주변의 대지는 초토화된다. 검회색 용암대지에 화산재가 쌓이고 군데군데 화산쇄설물이 떨어져 있다. 불모의 대지가 된 것이다. 이런 곳에 처음으로 찾아드는 생명이 바로 이끼(지의류)다. 그래서 지의류는 ‘식물 군락의 개척자’라고 한다. 히말라야나 알프스의 고산지대 만년설 바로 아래에도 이 지의류는 있다. 북극 근처 더 이상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지의류는 있다. 높은 산의 바위는 낮에는 직사광선에 직격을 당하는데 자외선의 비중이 산 아래보다 더높다. 또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주변의 물이 언다. 바람도 거세고 날씨 변화도 심하다. 보통 이런 곳에는 어떤 식물도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에도 지의류는 있다. 남극도 그렇다. 펭귄 이외에 누구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극한의 땅에도 식물이 산다. 그러나 속씨식물은 겨우 2종, 선태류는 100여 종인데 반해 지의류는 350여 종이 살고 있다. 힐러리와 텐징 노라가이가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을 때도 지의류는 이미 그곳에 살고 있었다.
지의류는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가장 살기 힘든 곳에서 초병처럼 버티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버티며 살 수 있는 것은 무슨 힘 때문일까? 바로 균류와 조류의 공생관계에서 비롯된다. 동물처럼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기생하거나 공생하는 등 다른 생물과 함께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균이다. 그리고 그 균 중 조류와 같이 평생을 보내는 것이 바로 지의류다. 균은 변식 형태에 따라 자낭균류와 담자균류로 나누는데 이중 지의류를 만드는 균들은 대부분 자낭균이다. 지의류는 이 자낭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지의류를 이루는 다른 한 축은 조류다. 그러나 한 종류가 아니다. 남조류가 13가지 속, 녹조류의 19가지 속이 지의류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녹조나 남조는 기본적으로 물에서 사는 생물들이다. 이들을 균류가 포섭해서 육지에서 살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류가 다양하고 균류도 다양하다는 것은 결국 지의류가 공동의 조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란 걸 의미한다. 균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고, 광합성을 할 수도 없다. 따라서 다른 생물에 기생하거나 공생하는 것이 최선인데 그 과정에서 조류와의 공생에 성공한 꽤 많은 조상들이 있었던 것이다.
지의류도 경쟁을 한다. 같은 지표를 놓고 다른 식물과 경쟁을 한다. 또한 다른 균류와도 경쟁을 하고, 다른 조류와도 경쟁을 한다. 이런 경쟁의 결과가 공생하는 생물의 손을 들어줬을 때 이들은 기꺼이 공생이라는 형태의 진화를 이룬 것이다.
지의류는 분류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조류와 균류의 유전자가 이리 저리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의 공생형태인 지의류는 둘이지만 하나로 행동한다. 각기 다른 개체였다가 나중에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발생과정에서부터 하나로 태어난다. 균은 위태로운 바깥환경에서 내부의 조류를 보호하고 수분을 공급하며 질소영양분도 제공한다.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탄수화물을 공급한다. 이러한 관계는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극한의 환경에서도 이들의 생존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조건이 좋은 경우에도 다른 생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보인다. 과학자들은 이들 지의류가 육지 표면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박재용 미드
166~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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