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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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필연
우연의 필연
컴컴한 용산 솔숲. 뜻밖에도 자동차를 달려 도착한 곳이다. 원래 함양구송을 찾으려 했으나 마뜩하지 않았고, 새로운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거창으로 오게 되었다. 당장 내일 어디로 튈지 모르게 살아온 내 인생의 궤적 같구나!
거창 가북면 용산마을은 진양정씨 집성촌인데, 이곳에 용산 솔숲을 만든 이는 정필달(1611∼1693)이라 한다. 한맥을 잇는 그의 호는 하필이면 팔송(八松)이더라.
용산 솔숲은 지리산의 현자 남명 조식 선생과 연결고리(8)가 있었으니. 나는 남명 사상에 한 다리를 걸쳐두고 지리산 자락에서 십수 년을 살았다. 현실의 장벽을 정면으로 뚫고 나아가는 천 길 낭떠러지, 지리산 천석종의 무거움-남명 사상! 나의 궤적을 뚫고 지나온 우연은 필연이었더라.
지난 비에 불어난 개울물이 우렁차게 흐른다. 산자락엔 밤안개가 걸리고, 들판의 벼는 노오랗게 익어간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용산마을을 한 바퀴 돌아왔다. 보름을 앞두고 불쑥 차오른 달이 먹구름 속으로 숨는다.
넉넉하고 운치 있는 정자 팔송정에 앉아 한밤의 솔숲을 내다본다. 우리네 마을숲에는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기 마련인데, 솔숲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 소나무의 얼을 찾아 전국을 떠돌던 때가 있었지! 어쩌면 그 기운을 이어 이 솔숲에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침낭에 들었지만, 습기와 더위에 밤새 침낭을 걷어찼다. 계절을 잊은 10월의 날씨, 참 이상하고 불안한 세상이다. 지척의 물소리에 밤잠을 설쳤다.
아침 6시 밖이 훤히 밝아와 텐트를 걷고 솔숲 산책에 나섰다. 산책로 옆 물이 고인 빈터에 솔숲이 들어와 한 폭의 그림이 되고. 뚝방에 물방울을 잔뜩 매단 쑥부쟁이꽃이 청초하다. 청딱다구리 한 마리 아침의 숲을 일깨우고, 오종종한 고마리꽃 피어나는 물도랑엔 개구리가 폴짝 뛰어든다. 솔숲 가운데 바위들이 정겨운데 둥글둥글 알돌 하나 내 마음에 뛰어든다.
산자락 자욱한 안개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솔숲이 아련한 분위기에 잠긴다. 팔송정 올라서서 이 풍정을 짜릿하게 느껴보아야지. 줄기의 크고 작음, 멀고 가까움에 따라 꿈틀꿈틀 용춤을 추는 실루엣~ 안개가 한눈을 멀게 하니 오히려 또렷해지는 역설이로다.
이제 궤적을 뚫은 우연의 필연을 살펴봐야 하겠지? 남명 조식은 지리산 덕산동에서 산천재를 짓고 후학을 길러 남명학파를 이루었다. 남명 사상은 경의(敬義)를 바탕으로 실천적 의지를 강조한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1592) 당시 곽재우 등 후학들의 뛰어난 의병 활동이다. 남명 사상은 풍전등화를 맞은 조선의 이념적 허를 찔렀다.
광해군 때 남명의 수제자 정인홍은 조선의 남명 정신을 꿈꾸었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숙청되면서 남명학파는 거의 몰락으로 치달았다. 그 뒤 남명학파의 구심점이 된 거창의 정온이 용산범국회(1636)를 결성하니. 남명 사상을 잇고 실천하려는 연합체다.
긴 세월이 흘러 용산의 정필달이 남긴 기록이 실마리가 되어 구한말 용산범국회가 재결성되었으니. 남명의 후예 곽종석은 3·1운동 이후 거창에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하게 된다. 이처럼 용산범국회는 남명 사상의 실천적 구국 활동에 한맥을 이어놓았다.
내가 사모하는 지리산과 남명(南冥), 그리고 컴컴한 용산 솔숲의 여덟 소나무, 이 어찌 우연의 필연이 아니겠는가!
⎯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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