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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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쓰다듬는 강물
마음을 쓰다듬는 강물
땅거미가 내려앉는 강물엔 지친 마음을 쓰다듬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손길이 있어. 생명으로 태어난 것은 모두 같은 심정일 거야.
지금 바라보는 저 강은 평화롭고 자연스럽기만 한데. 눈앞에 나타나는 우리의 현실도 그러할까? 해 질 무렵 텐트를 칠 적당한 장소를 잡기 위해 강으로 들어섰다. 둔덕을 바라보며 얕은 곳을 찾아 물을 건넜다. 강바닥에 뿌연 퇴적물과 파래가 미끄러워 중심을 잡느라 온몸이 비틀거린다. 냄새마저 심각한 칠월 초 산청 경호강 하류!
조심조심 달뿌리풀이 우거진 자갈밭에 텐트를 치니. 한가롭게 앉아있던 저녁 물새들이 황급히 자리를 뜬다. 그렇지, 인류 문화는 야생에 오래된 두려움이었지.
얕은 강물에 잉어들이 고개를 내밀고 솟구치기를 반복한다. 하얗게 쏟아지는 동심원 속으로 발간 노을이 물들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오래도록 지켜본다. 꼬리지느러미만 내놓고 움직이는 거대한 모습이 상어를 연상케 한다. 저들은 어찌하여 저러고 있을까?
강물에 비친 노을도 컴컴한 산자락에 내어준 시간, 동쪽 산자락엔 보름을 바라보는 달이 걸렸다.
더운 습기에 달려드는 벌레들을 피해 텐트 속에 누웠다. 낮 동안 달구어진 바닥의 자갈돌이 후끈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주위는 온통 풀벌레 소리로 가득한데. 강바닥에 살아가는 물떼새의 높은음자리, 활처럼 튀어 오르는 물고기 소리가 귓가에 얹히고. 야생스런 달뿌리풀 덤불 사이로 인류 문명의 불빛이 반짝거린다.
한밤중에 오줌을 누러 나왔더니 휘영청 달이 밝은데. 어릴 적 밤하늘에 수없이 보았던 북두칠성이 내려다보고 계신다. 달빛을 품은 강물 위로 밤잠을 잃은 왜가리 한 마리 고함을 치며 날아간다. 지척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소리에 낯선 잠을 청한다.
강이 병들게 된 것은 우리가 배불리 먹고 흥겨움에 땅을 치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을 누려온 대가이니. 생명의 탯줄, 강의 오염은 우리 건강의 바로미터 아닌가.
지난밤은 참으로 길었다. 5시 반쯤 강변 산책로를 걷기 위해 나왔다. 침수 다리 아래 서양에서 들어온 붉은귀거북 한 마리 오염된 수초 뒤로 황급히 숨는다. 이 강에는 바위 위로 올라와 몸을 말리는 붉은귀거북이 고향인 듯 우글거린다. 그 위로 미꾸라지를 방생하는 이른 아침의 두 여인네!
도심 불빛 위로 동쪽 하늘 여명이 붉다. 날은 점점 밝아오는데, 밤을 새워 피어난 달맞이꽃 얼굴이 환하게 밝다. 나도 일상에서 이런 인사를 나누고 싶다.
높은 봉우리의 정기는 낮은 골짜기로 흘러드니. 산책로에서 내려다보는 경호강은 이 강산의 사연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식사하는 백로와 왜가리를 품고서.
⎯야생의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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